[청사초롱-이철환] 사랑의 기쁨
입력 2012-01-30 18:34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아픈 마음을 감싸주는 건 우리의 작은 사랑이다”
오래전 일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된 제자 효진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효진이는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아이가 보낸 편지를 함께 보내왔다. 아래 있는 편지는 5학년 아이가 담임선생님인 효진이에게 쓴 편지다.
‘사랑하는 박효진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저녁 식사는 드셨겠죠? 저는 엄마가 끓여 주신 된장찌개에 고추장을 넣고 맛있게 비벼 먹었어요.
요즘 저 때문에 엄마와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신 책을 다 읽었어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었어요. 읽으면서 울기도 했어요. 책을 쓴 작가 아저씨가 어렸을 적에 공사장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달려가 울음을 터트린 내용이 정말 슬펐어요.
저도 작년에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지난여름이었어요. 엄마께서 제 학원비 때문에 냉면집 전단지를 집집마다 붙이고 다니셨어요. 학교가 끝나고 같은 반 친구와 교문을 나서는데 저희 엄마가 붙이고 다니는 냉면집 전단지가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속상한 마음에 전단지를 주워 집으로 가져가려 했는데, 근처에서 어떤 아줌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곳을 바라보니 저희 엄마가 서 있었어요. 남의 집 대문에 지저분하게 왜 이런 전단지들을 붙이냐며 소리소리 치는 아주머니 앞에 서서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엄마는 화난 아주머니에게 입이 마르도록 죄송하다고 말하셨어요. 엄마의 모습이 몹시 안쓰러웠어요. 함께 있던 같은 반 친구가 “너희 엄마 아냐?”라고 저에게 물었어요. 저는 “맞아”라고 대답했어요.
그러고는 엄마께로 달려가 엄마를 혼내는 아주머니가 놀랄 만큼 큰 목소리로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엄마께서 깜짝 놀라며 “왜 이렇게 일찍 끝났어?”라고 물으셨지만, 엄마는 민망한 듯 어쩔 줄 몰라 하셨어요. 그때 눈물이 막 쏟아지려는 것을 저는 억지로 참았어요.
집에 오는 동안 저는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미나게 말씀드렸어요.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답니다. 엄마 마음이 많이 슬펐을 테니까요…. 저는 그날 보았던 엄마의 빨갛게 익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 밤, 낮에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쓰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와 소리 죽여 울면서 일기를 썼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선물해주신 책을 쓴 작가 아저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작가 아저씨는 아버지가 계셨으니까 저보다는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엄마를 뵐 때 정말로 가슴이 아픈 건, 엄마가 힘드실 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거예요. 엄마가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의 옆 자리는 언제나 비어있거든요. 엄마께서 홀로라는 것이 마음 아파요.
아 참! 선생님!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조금 서운하기도 한 일이 있어요. 오늘이 ‘제10회 전국 초등학생 국토사랑 글짓기 대회’ 발표 날이었거든요. 마음을 졸이며 확인해 봤더니 제가 동상을 받았어요.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우수상’ 이렇게 있는데, 그래도 꼴찌는 면했어요. 전국에서 1800편 정도가 응모했대요. ‘어린이동아’ ‘국토연구원’ 홈페이지에 제 이름이 나와 있어요. 더 잘 쓸 걸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선생님,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세요. 선생님, 너무너무 사랑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아이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의 사랑이 마음 아팠다. 아이의 편지를 읽으며 문득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말이 생각났다.
“나에게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잣집 아이들 중에 누구를 가르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부잣집 아이들을 가르치겠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가난이 가르쳐 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건 소리 없이 피어나는 작은 들꽃이다. 아픈 마음을 감싸주는건 우리의 작은 사랑이다.
이철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