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바보 사려
입력 2012-01-30 18:33
며칠 전 설이 지나갔다. 옛날에는 섣달과 정월에 세시 놀이가 수도 없이 많았다. 윷놀이며 연날리기와 같은 익숙한 전통놀이에서, 대보름의 더위팔기나 액땜처럼 이제는 낯설어진 놀이도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그믐날의 바보팔기다.
어린 꼬맹이들이 골목을 누비며, ‘바보 사려’ 외친다. 글을 깨치기 시작하는 나이에 영리함이 부러웠으리라. 하지만 영리함이란 무엇인가? 결국 이익을 따지고 시비를 다투는 일이다. 바보스러움이야 말로 큰 지혜란 것을 꼬마들이 알 턱이 없다.
송나라 범성대(范成大)는 ‘매치애사’에서 “골목골목 다녀도 바보 못 팔자, 저희끼리 깔깔대며 야유하네. 이 늙은이 주렴 아래 앉았다가, 바보 사려고 값을 물었더니, 아이들 하는 말 ‘할아버지가 사신다면 돈 받지 않고, 천년만년 바보를 그냥 드립죠”하고 노래했다. 장유는 여기에 보태, 바보를 사는 값으로 자신의 지혜를 주겠다고 한다.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小智不及大智).’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란 교활함이요, 큰 지혜는 바보스러움이다. 바보는 시비가 없어 세상의 말을 받아주며, 계교가 없어 우직하게 걸어간다. 텅 비었기에 미움 받지 않고, 가지지 않기에 전부를 가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고려의 대시인 이규보(李奎報)는 ‘뜬 세상에 언제나 깨어 있는 이는 큰 바보일세(浮世長醒卽大癡)’라고 노래하였다.
정초의 골목 어귀, “바보 사려!” 꼬마들의 외침을 듣고 싶다. 똑똑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 바보가 그립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