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순영] 君君臣臣과 자본주의

입력 2012-01-29 19:48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공자가 제(齊)나라 경공(景公)에게 한 말이다. 오랫동안 우리 교육의 지침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구절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의 그 뜻을 되새겨 보고자 해서이다.

시장경제에는 여러 경제주체가 있다. 크게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 금융회사, 국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주체들이 각자 시장규율을 잘 준수하고 윤리와 도덕성을 지키면, 다시 말해 군군신신 부부자자하면 정부는 굳이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 인간의 탐욕으로 군군신신 부부자자하지 못해 시장의 존립을 위협받게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아이러니는 자신들의 존립마저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주 스위스에서 다보스포럼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현재 상황을 자본주의의 위기라 인식하고, 대안을 찾는 논의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탐욕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따라서 시장규율의 강화와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군군신신 부부자자, 다시 말해 시장원리를 잘 준수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같은 시기, 한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재벌 대기업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기업 2, 3세들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빵 커피 순대 등 소상공인의 업종에까지 진출하여 골목상권을 고사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치졸한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급기야는 대통령이 “재벌이 그런 거 하면 되겠느냐”며, 군군신신 부부자자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을 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난리가 났다.

물론, 현재 전개되는 대기업에 대한 공세가 어느 경우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인지분을 전혀 갖지 않고 있고, 대부분 매장이 사옥에 있고, 제품의 가격대도 달라 동네 빵집과는 경합관계가 별로 없다는 경우 등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것이 대기업 본연의 사업이며, 공정하냐는 점이다. 과연 대기업 창업세대들이 추구했던 창의와 혁신, 불굴의 기업가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되자 각 대기업은 앞다투어 관련 업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승자박이다. 어른이 매를 맞고 나서야 말을 듣는 부끄러운 일이다.

자본주의가 위기국면에 처한 것은 분명하지만 수십억의 인구를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경쟁을 통해 더욱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리의 경우,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이르게 하는 기적을 이루어내게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월가(街)를 점령하라’와 같은 반체제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확산되고 있으므로 변화가 필요함이 분명하다. 특히 우리처럼 경제력의 재벌 집중,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및 인력탈취, 소상공인 생존권 위협 등으로 중소기업 생태계가 무너지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기업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 군군신신 부부자자의 공정시장원리를 깊이 새기고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살리는 길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기도 하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