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석패율 제도
입력 2012-01-29 19:48
아쉽게 떨어진 후보자의 득표비율을 말하는 석패율(惜敗率)은 낙선자의 득표수를 당선자의 득표수로 나눠 100을 곱해 계산한다. 이를테면 어떤 후보가 10만표를 얻어 당선되고 경쟁자였던 다른 후보는 9만표밖에 얻지 못해 떨어졌다면 낙선후보의 석패율은 90%다. 따라서 석패율이 높을수록 그만큼 아쉽게 낙선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선거에서 석패율 제도란 한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중복출마자들 중에서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번도 시행해 본 적이 없다. 정당의 지역색이 워낙 강하게 나타나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쯤 시도해볼만 한 제도이지만 정파간 이해가 엇갈려 좀처럼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영남에서도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이 탄생할 수 있고 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의원이 탄생할 수 있어 특정 지역에 치우친 불균형을 약간은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석패율제는 특정 정당 당선자가 시·도별 전체의석의 일정 부분 이상을 차지할 경우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여러 정당 소속 의원이 당선되는 수도권이나 충청·강원지역에는 애초부터 해당 사항이 없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국회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돼오던 이 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지만 통합진보당이 최근 강하게 반발해 성사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사실 석패율은 지역구도 정치타파를 외쳐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숙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 때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한나라당에 제안했던 중·대선구제로의 개편이 어렵자 이 제도를 연구해보라고 측근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합진보당은 석패율 제도는 지역구도의 극복에는 실효가 없는 제도이며, 설사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한 방편이라 하더라도 하수 중의 하수란 입장이다. 통합진보당은 자기 당에게 유리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독일은 유권자가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해 정당득표율에 따라 그 정당의 총 의석을 정한 다음 지역구 당선자를 우선 충당하고 나머지를 비례의석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선거를 치른다.
분단된 독일을 통일한 탁월한 정치인인 헬무트 콜 전 수상이 지역구 선거에서는 떨어지고도 이 제도로 구제돼 위대한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지역대표성을 강조하는 우리 정치 풍토상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