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아버지와의 조우
입력 2012-01-29 19:01
아버지는 1년에 세 번 정도 나를 부르신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그분은 설날과 추석에, 그리고 당신의 기일에 우리들과 조우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마치 아버지가 옆에 계신 듯 하는 말은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잘 계신 거죠?”의 반복이다. 단 세 마디지만 외롭게 떠나신 그분을 향한 회한의 애정이 깃든 말이다.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 나의 감정은 뜨악했다. 국문학자이셨던 아버지는 우리 남매의 기억 속에 두렵고 매정한 분으로 살아계신다. “나라가 어려운데 겨울에 무슨 바닷가 여행을 하겠다고?” “돈 없어 대학 못 가는 사람이 많은데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는 사사건건 나라 살림과 자식의 씀씀이를 연결시켰다.
학점이 나쁠 때는 새로운 결심으로 그 다음 학기에 등록하라며 학비를 내놓지 않으셨다. 중간에 끼어 맘고생을 많이 하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산골에서 어렵게 자수성가하신 아버지를 이해해라”고 하셨다.
내가 어엿한 직장인이 됐을 때도 내 소비에 대한 아버지의 억압은 계속돼 결혼 때 혼수용품조차 뜻대로 장만하기 어려웠다. 지병이 있던 아버지는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셨고 머지않아 우리 식구의 일상에서 잊혀졌다.
우리 남매가 아버지의 삶을 묵상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 않다. 홀로 사시던 어머니가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서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나서다. 돈에 대한 아버지의 가치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혼자 남을 아내 걱정, 자식들을 향한 미안함….
아버지의 외로움이 가득했다. 또 있다. 언제부터인가 “외모나 성격이 둘 다 아버지를 많이 닮아가는구나” 하는 친척 어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로부터는 “할아버지와 똑같은 얘기를 자주 한다”는 원성을 들으면서부터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아버지식의 소비생활, 결혼과 직장생활 등에 대한 가르침이 아직도 내 생활 속에 유효하다는 것을 뒤늦은 나이가 돼서야 깨닫는다. 잊혀진 듯한 아버지는 실제로 저 깊은 내 안에서 살아계신 거였다.
“거봐라…그러면서 닮는다잖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어머니는 그렇게 표현하신다. 올 설날, 아버지 묘소에서 뒤늦은 후회에 고개를 조아리는 우리 남매에게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괜찮다. 그게 바로 유전하는 인생이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말, 남의 얘기가 아닌 것이다. 나이 들어 고마운 것이 적지 않다. 감사한 것, 소중한 것들의 앞 순위에 옛날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 채워지니 하는 소리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것들은 돈으로도, 자리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하늘은 나이 들어가는 인간에게 육체의 힘을 빼는 대신 비움과 깨달음의 지혜를 삶의 장치로 심어주는구나 감사하게 되는 나날이다.
고혜련(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