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재벌개혁 기치] 재계 “경제 가뜩이나 어려운데…” 좌불안석

입력 2012-01-27 19:05

정치권이 ‘재벌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대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더구나 총선,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때리기’ 강도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여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침체로 올해 경영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옥죄기가 심해지면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꺾어 해외로 공장 이전 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기업 관계자는 27일 “선거 때만 되면 대기업 때리기가 단골 이슈였다”며 “실정 책임을 대기업에 돌려 중소기업들과 서민들의 표를 끌어모으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럴 때는 소나기를 피해가는 게 상책”이라며 “그동안 숱한 비난 여론에도 꿈쩍 안 하던 대기업들이 대통령이 조사하겠다고 하자 잇따라 빵집과 순대사업에서 철수한 것도 이런 맥락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살리고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급조해 내는 데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국민들의 정서와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잘 조화시켜서 기업가 정신이나 투자의욕을 살리면서 국민정서도 어루만지는 슬기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며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다 보면 자칫 경제에 주름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특히 “올해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고 하는데 기업들이 고칠 것 있으면 고치고 양쪽이 윈윈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나 정부가 진정한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 규제를 많이 풀어줬지만 서민들을 위한 미소금융재단 출연 등 대기업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져 오히려 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기업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많다”며 “대기업 손발을 묶어놓게 되면 아예 규제가 덜하고 인센티브를 많이 주는 해외에 나가 공장을 짓겠다는 기업들이 많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도 “최근 사회 분위기가 반기업 정서로 흐르면서 대기업들을 옥죄는 제도들을 만들거나 부활시키려 하는 것은 국가경제 차원에서 큰 문제”라며 “기업들이 개선해야 할 것은 고쳐야겠지만 기업을 전체적으로 싸잡아 개혁 대상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기업들은 정치권과 대통령까지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숨죽이며 동향만 살피고 있다. 자칫 민감한 시기에 반발했다가 당국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