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재벌개혁 기치] 한나라 비대위 ‘경제 민주화’ 공약… 재벌 경제력 남용 막아 ‘공정’ 실현
입력 2012-01-27 19:04
한나라당이 27일 헌법 119조2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의 실현을 정강·정책 전면에 넣기로 한 것은 진일보한 ‘좌클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조항이 민주통합당의 간판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이명박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상징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두 마리 토끼를 노린 ‘경제 민주화’ 카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 유학파인 김 위원은 1987년 현행 헌법 개정 당시 독일 헌법에서 차용한 이 조항의 입안을 주도한 여당의원이었다. 이 때문에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이 조항의 핵심 골자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이다. 김 위원은 정책쇄신분과회의 직후 “정부가 시장경제에서 해야 할 일이 뭐냐는 차원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어봤다”며 “이 조항이 정강·정책에 들어가면 거기에 입각해 소위 경제세력과 관련된 정책들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빵, 커피, 순대, 떡볶이 등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면서 최소한의 기업윤리마저 망각하고 있는 재벌을 규제하면서 중소기업과 소비자의 권익 보장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은 평소 “재벌은 항상 탐욕에 차 있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해왔고 권영진 의원도 이날 브리핑에서 “재벌의 탐욕”이란 표현을 쓰면서 반(反)재벌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대기업집단이 스스로 자신들의 환부에 칼을 들이대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목상권을 점령하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행태가 마치 “국제무대에서 크게 활약해야 할 박지성 같은 선수가 국내 골목축구에서 대장노릇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당의 이런 움직임에는 탐욕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월가점령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새로운 시장경제 질서가 불가피해졌다는 시대적 상황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친기업(Business-friendly)이라는 공격을 받아온 MB정부의 ‘성장 정책’ 기조와의 질적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종인 조항’에 대해 “비대위에 (개정안이) 올라올 것이고 회의를 거쳐 의총에서 논의할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공동체 아닌가? 서로가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거죠. 같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힘을 실어줬다. 자신과 불화설이 나돌고 있는 김 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한 비대위 주최 보육교육 정책 간담회에 예고 없이 찾아가 방청석에서 40여분간 지켜보다가 기자들과 만나 던진 코멘트다.
하지만 반재벌 노선에 대해 당내 보수 강경파의 반발과 논란이 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 위원도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가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장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둘러싸고 당내에 여러 의견이 있다.
4·11 총선 경쟁자인 민주통합당이 재벌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여야 간 불꽃 튀는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이 경제 민주화를 ‘분배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한나라당은 거대 경제세력으로부터 시장질서와 중소기업·소비자를 보호하는 ‘공정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총제를 두고는 박 위원장의 ‘보완’과 민주통합당의 ‘부활’이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