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백석을 찾아서] 자야 기억의 오류?… 시 속 나타샤는 특정인물 아닌 ‘연인’ 지칭
입력 2012-01-27 17:59
자야는 1936년 가을,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 ‘함흥관’에 갔다가 백석을 처음 만났다고 에세이집 ‘내 사랑 백석’(1995)에서 술회했다. 이에 대해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1936년 가을은 오히려 백석이 통영의 여인 박경련에 대한 연정을 키워나가던 시기”라며 “그해 겨울 백석이 친구 허준을 통해 박경련에게 정식 청혼을 넣었다는 점에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에세이집의 오류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신 두 사람의 첫 대면을 1937년 4월 말이나 5월 초로 추측했다. 이는 자야가 진술한 만남 시기보다 훨씬 뒤다. 1937년 4월 7일 친구 신현중이 박경련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백석은 마치 여우에 속은 것 같고 놀림감이 된 듯한 허탈감에 빠졌을 것이고 그즈음, 영생고보 동료 교사의 환송식이 열린 요릿집에서 자야를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오류는 넥타이에 얽힌 기억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백석의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부분)
‘잠풍날씨’란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상쾌한 날씨를 말한다. 자야는 이 시에 나오는 넥타이가 자신이 서울에서 백석과 같이 지낼 때 명동에서 사 준 넥타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내 사랑 백석’에서 드러난 자야와 백석의 교제기간은 1937년 봄부터 1938년 3월에 이르는 함흥 시절과 1938년 하반기부터 1939년 10월에 이르는 경성 시절”이라며 “그런데 백석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는 1938년 5월 ‘여성’지에 발표됐기에 이 시에 명동에서 사 준 넥타이가 등장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야는 1938년 경성 청진동 집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백석이 누런 미농지 봉투를 내밀었는데 그 속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가 들어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백석은 이 시를 1938년 당시 ‘삼천리’ 잡지 기자였던 소설가 최정희(1906∼1990)에게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정희가 백석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이 시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그즈음 백석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다가 사랑하게 되지 못하는 때 하나는 동무가 되고 하나는 원수가 되는 밖에 더 없다고 하나 이 둘은 모두 다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백석은 최정희의 냉정함에 대한 서운함을 적고 있다.
혹자는 시 속의 ‘나타샤’를 두고 통영 처녀 박경련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세간에는 말이 많다. 하지만 문맥으로 보면 이 시는 유행가풍의 사랑법을 일거에 격파한 드높은 격조가 있다. 연인에게 산골로 가서 살자고 하면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내는 백석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타샤’란 백석이 사랑한 모든 연인들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호칭일 수 있다. ‘나타샤’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백석의 연인이자 모든 사내들의 연인인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