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씨가 대표인 호텔신라가 거센 여론에 밀려 커피·베이커리 카페인 ‘아티제’를 접기로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은 ‘재벌 빵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인식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재벌가 2·3세들의 빵집 늘리기 경쟁에 동네 빵집들이 고사 직전 위기에 몰린 데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았다. 자영업자 제과점 수는 2003년 초 전국 약 1만8000개에서 지난해 말 4000여곳으로 크게 줄었다.
호텔신라가 제일 먼저 철수를 결정한 것은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철수를 하지 않을 경우 여론의 질타가 철수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실태조사 지시도 있는 만큼 당국의 대응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호텔신라 외에 재벌가의 빵집 경쟁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외손녀인 장선윤씨는 식품업체 블리스를 통해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포숑’을 들여와 롯데백화점 내 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블리스는 빵 제조와 유통, 와인수입 사업을 하는 업체다. 2010년 설립된 블리스는 장씨가 지분 70%를, 롯데쇼핑이 30%를 갖고 있다. 롯데 측은 포숑이 백화점에만 입점해 있어 골목상권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최근엔 장 사장의 남편 양성욱씨가 외국 생활용품 수입·판매업체 ‘브이앤라이프’를 설립하고 다음 달 1일부터 물티슈 등 판매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여론 때문에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조선호텔베이커리 지분 40%를 갖고 있다. 조선호텔베이커리는 베키아에누보, 데이앤데이, 달로와요 등의 카페 및 베이커리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데이앤데이’는 이마트 118개 매장에서 빵을 판매하고 있다. ‘달로와요’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등 10개 점포에 입점해 있고, ‘베키아에누보’는 본점과 센텀시티점 등 6개 점포에서 영업 중이다.
신세계 측은 정 부사장이 다른 재벌가 딸들처럼 직접 사업을 하는 게 아닌 데다 동네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그러나 신세계 백화점에 한꺼번에 입주해 있어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맏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 전무는 지난해 7월 ‘오젠’이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열었다. 1호점은 제주 해비치호텔에 있고, 양재동 사옥에 2호점까지 냈다. 현대차그룹은 “오젠은 해비치호텔의 한 사업부일 뿐이며 영리 목적이 아니라 사원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구내매점 성격”이라고 말했다.
재벌가 2·3세는 아니지만 제빵업계의 큰 손인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점포 수가 3000개를 돌파하며 동네빵집을 위협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지난해에만 매장 300여개를 열었다.
베이커리 외에도 재벌가 2·3세들이 비빔밥에서부터 덮밥, 라면, 떡볶이, 카레식당까지 진출해 서민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애경그룹은 일본라면체인 ‘잇푸도’, 농심그룹은 카레식당 브랜드 ‘코코이찌방야’, 매일유업은 인도식당 ‘달’ 등으로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
호텔신라 빵집 철수 안팎… “재벌이 동네빵집 죽이나” 여론 악화에 백기
입력 2012-01-26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