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출간… 장녀 호원숙씨의 감회 “큰 산맥을 종주하듯 어려웠어요”

입력 2012-01-26 19:23

“어머니의 소설을 읽는 것은 큰 산맥을 종주하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려움만 주신 것이 아니라 냇물이 흐르고 들꽃이 피어있는 즐거움도 주셨습니다. 언어의 즐거움, 표현의 즐거움, 이야기의 즐거움이었습니다.”

2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출간 기념 간담회 자리에서 고(故) 박완서씨의 장녀 호원숙(59)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전집 결정판’은 당초 2010년 5월 기획돼 이듬해인 2011년 10월 20일 작가의 팔순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꼼꼼히 읽어나가던 작가가 담낭암으로 입원하고 급기야 2011년 1월 22일 작고하는 바람에 호씨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이경호 홍기돈 권경아씨가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최종 갈무리했다.

호씨는 생전의 박완서씨와 함께 경기도 구리 아치울 마을 자택에 기거하면서 소설가인 어머니의 글 쓰는 고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런 만큼 전집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시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 1년 동안 내게 맡겨진 숙제가 굉장한 축복이자 동시에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문학을 가족이면서 독자로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교정을 보다가 내팽개칠 때도 있었고 머리맡에 놓고 잠을 자다가 일어나 다시 불을 켜고 보기도 했지요. 어머니는 작품 속에 항상 질문과 의문점을 숨겨놓고 있었기에, 저 역시 다 읽어본 소설들인데도 뭐가 또 궁금한지 다시 펼쳐보기를 반복했어요.”

그는 “새로 해설을 쓴 평론가들이 어머니의 글이 과거의 글이 아니라 앞으로도 많은 연구 대상이 될 수 있고, 새로운 독자를 만나 새 품격을 가질 수 있는 현재진행형 작품이라는 것을 빼놓지 않고 썼다”며 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아무리 좋은 글이 있어도 읽어주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이번 전집의 각권마다 어머니가 쓴 초판본의 서문을 그대로 실은 것은 그 시대상황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서출판 세계사에서 펴낸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엔 작가의 등단작인 ‘나목’부터 2004년 펴낸 마지막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까지 장편·연작소설 15편이 전체 22권에 담겼다. 기존에 17권으로 나왔던 ‘박완서 소설전집’에 최근작인 ‘아주 오래된 농담’과 마지막 장편이 추가되고 작가 뜻에 따라 ‘욕망의 응달’은 빠졌다. 또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수록됐던 ‘미망’은 다시 원제 그대로 실렸다. 출간 간담회에는 유족들을 비롯해 이경자 은희경 등 후배 문인들도 함께 자리해 고인의 삶과 문학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