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있는 ‘강남 세입자’들 두번 운다… 집은 안팔리고 전셋값 高高
입력 2012-01-26 22:03
서울 잠원동 D아파트에 32평짜리 전세를 사는 이모(42)씨는 집주인이 갑자기 다음 달 말 집을 비워 달라고 해서 근처 부동산중개업소를 전전하고 있다. 이씨가 살던 아파트는 전셋값이 4억7000만원으로 2년 전에 비해 2억원 가까이 올랐다. 전셋값을 맞춰 25평대를 찾고 있지만 평수가 작은 아파트는 상당수가 반전세인 데다 그나마 매물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씨는 “수도권에 사놓은 40평대 아파트는 몇 년째 팔리지 않아 은행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지역 전셋값이 급등하는 반면 매매는 끊겨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집 있는 ‘전세 푸어’들이 늘고 있다.
수도권에 집을 마련해놓고 자녀들 학교문제나 직장 때문에 강남이나 목동 등 서울에 전세로 들어왔다가 자신의 집이 팔리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다. 서울에 비해 수도권 집값 하락폭이 커 수도권 집을 팔아도 그 사이 오른 전셋값을 대기 버거운 경우도 적지 않다.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 전세시장은 강동구 고덕시영 재건축 단지 이주 수요 때문에 다시 꿈틀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이주비 지급이 개시된 강동구 고덕시영 재건축 단지는 2444가구나 된다. 또 송파구 가락시영 재건축단지도 향후 대규모 이주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그러나 강남권에는 이미 아파트 전세를 찾기 쉽지 않아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기존 강남권 아파트 전세는 세입자들이 이미 전셋값을 올려주고 재계약을 했거나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세입자들도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전셋값 상승을 견디다 못해 수도권으로 밀려난 세입자들도 많지만 강남권은 여전히 전세물량이 부족해 전셋값 하락폭은 크지 않다는 게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치동 J부동산 관계자는 “대치동에 학군 메리트가 줄었다고 하지만 여기를 떠나려고 해도 근처 전셋값도 비슷해 그냥 눌러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세매물이 거의 없다”면서 “매매가 끊기면서 수도권에 있는 집도 팔리지 않으니 움직일 수도 없어 딱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1억∼2억원씩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 어려운 세입자들은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주택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내 다세대·연립주택의 전세계약 건수는 모두 2만4024건으로 2010년 하반기(1만2415건)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급등한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이나 신혼부부들이 다세대·연립주택으로 눈을 돌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