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뒤흔든 장면들 그 뒤에 숨겨진 중국인의 심리… ‘중국을 읽다’

입력 2012-01-26 18:38


중국을 읽다/카롤린 퓌엘/푸른숲

중국. 30년 전에는 문화대혁명의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공산주의 제국이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올라선 신흥국가의 위상을 뽐내고 있다. 늙은 중국이 젊어지는 주사라도 맞은 듯 원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단기간에 변모할 수 있었을까. 중국 개방정책의 중심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있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가 왜 개방의 아버지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개혁·개방을 선택한 덩샤오핑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은 새로운 세대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했다. 청년층은 톈안먼 사태 유혈 진압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1991년 6월 4일 자정, 톈안먼 사태 2주기에 수백 개의 맥주병이 베이징대 기숙사에서 창문으로 떨어졌다. 여전히 삼엄한 감시에 시달리던 대학생들이 절망에 못 이겨 저지른 행동이었다. ‘작은 병’(‘小甁’의 중국어 발음이 바로 ‘샤오핑’이기에)은 한때 그들을 꿈꾸게 했으나 지금은 말을 잃게 만든 중국 지도자의 이름을 떠올리게 했으니…. 강경 진압을 명령했던 덩샤오핑은 비무장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군대와 전차의 이미지만 남기고 이렇게 물러날 수 없었다. 그는 이 기억을 만회해야 했다.”(182쪽)

1980년부터 2010년까지의 고속 성장기에 중국에 거주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목격한 저자가 주목한 것은 중국인의 심리이다. 80년대의 한 장면인 ‘누구나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시대’의 한 대목.

“1982년 봄부터 외국 번역서들이 서점에 등장했다. 프랑스 문학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중국 독자들은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 문학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스탕달의 ‘적과 흑’, 베를렌과 랭보 같은 낭만시, 특히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푸코 같은 20세기 철학자들의 저작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대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대학가에서는 ‘시인회’가 유행했다. 불과 몇 주 만에 중국의 모든 대학에 ‘시인회’가 생겼다. 실제로 그때까지 중국 청년들이 볼 수 있었던 선전 문학과는 전혀 다른 몽롱시(朦朧詩)라는 감성적인 시 양식이 출현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시를 쓰고 싶어 했다. 모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인정받기 원했다.”(135쪽)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시로 표현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새로운 유희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인의 등장이다. 하지만 이런 ‘시인회’가 가능했던 건 중국 정부의 사실상 방관에 기인한다. 80년대를 다룬 1부 ‘덩샤오핑, 백 년 후 중국을 기획하다’는 이렇듯 덩샤오핑이 기획한 작은 차원의 개혁들이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변화의 도화선이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92년부터 99년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의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영국령이던 홍콩의 중국 반환이다. 97년 4월, 덩샤오핑이 사망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군대는 장쩌민(江澤民)에게 충성을 서약한다. 그러나 그해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기로 예정된 홍콩은 1월부터 집단적인 병에 걸린 듯 했다.

“운명의 그날이 다가올수록 홍콩은 밤낮으로 광기 어린 축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6월이 되자 6백만 홍콩 인구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홍콩의 한 정신분석학자는 쇄도하는 환자들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미지의 것을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도피인 셈이지요.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죽음, 불안, 배를 타고 홍콩을 떠나는 악몽 따위를 공통적으로 호소하고 있어요. 겪을 일이라면 철저하게 겪고 한시 바삐 과도기를 통과하고 싶은 겁니다.”(267쪽)

홍콩 반환 100일 후에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홍콩대학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600만 홍콩 인구는 중국이 홍콩 반환 과도기를 잘 넘기고 있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은 전체 질문자의 40%, ‘그저 그렇다’는 30%, ‘불만스럽다’는 겨우 13%였다. 선진국들의 우려와는 달리 중국 정부가 홍콩을 국제도시의 면모로 유지했기에 나온 수치였다. 중국은 더욱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다.

2000년대를 다룬 3부는 ‘화평굴기’로 상징되는 중국 정부의 외교노선을 다루고 있다. 문자 그대로 세계 평화를 지지하면서 대국으로 발전하겠다는 것인데 그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가 아프리카 자원 외교다. “중국인들은 2, 3달 만에 뚝딱 병원부터 지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석유라든가 다른 천연자원을 대가로 요구하지요. 중국인들은 그런 원자재를 수송하는 고속도로까지 자기들이 알아서 만듭니다. 그 도로는 아프리카 국가에 계속 남아서 지역 발전에 도움을 주고요!”(398쪽)

2006년 베이징에서 열린 무역박람회에 참석한 모하메드 구두씨의 이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끝내 얻어내고야 마는 중국 외교술의 한 방책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와 대륙을 흔든 중국 현대사의 장면을 다큐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문체가 돋보인다. 저자는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르푸앵’의 홍콩 및 베이징 주재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이세진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