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유랑하는 ‘토지’
입력 2012-01-26 18:23
작가 박경리(1926∼2008)를 기념하는 공간이 전국에 많다. 고향인 경남 통영, 제2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가 대표적이다. 통영은 ‘금이(今伊)’라는 이름으로 통영초등학교를 다닌 작가의 유년 추억이 서린 곳이다. 원주는 딸 김영주와 사위 김지하 시인이 활동하던 근거지였다가 뿌리를 내려 창작의 산실로 삼았다.
통영은 극진하다. 그의 사후에 미륵도에 묘소와 기념관을 묶어 박경리공원을 만들었다. 양지 바른 묘터는 말년에 작가가 직접 와서 골랐다.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면 길섶에 그의 글을 새긴 문학비가 서있다. 무덤은 소박하다. 멀리 쪽빛 바다가 보인다. 작가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기념관은 2010년에 지었다.
원주는 규모가 좀 크다. 단구동에 자리한 박경리문학공원은 작가가 18년간 살던 옛집을 중심으로 녹지가 조성돼 있고, 주변에 문학의집과 북카페를 거느리고 있다. 문학의집에는 손수 옷을 지을 때 썼던 재봉틀, 달 항아리, 호미와 밀짚모자 등의 유품이 있다. 인근 흥업면 매지리의 토지문화관은 후학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한 레지던스 시설이다.
통영과 원주를 관통하는 콘셉트는 ‘토지’다. 박경리를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린 한국문학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신산스런 삶을 살았던 것처럼 책 또한 유랑의 길을 걸었다. 1969년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이후 1994년까지 26년간 원고지 3만여 장이 여러 매체에 실리는 동안 출판사도 계속 바뀐 것이다. ‘토지’를 낸 곳은 모두 정상급 출판사였지만 작가와 인세 분쟁을 겪은 곳도 있다.
1973년 ‘토지’ 1부를 단행본으로 묶은 곳은 문학사상사였다. 이후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 솔출판사, 나남출판 등 다섯 군데를 거치면서 새로운 판형과 편집을 선보였다. 그때마다 폭발적 반응을 보이며 스테디셀러에 오르니 출판사로서는 매력적인 원고가 아닐 수 없다.
‘토지’가 이번에는 10년간 정든 나남출판을 떠나 마로니에북스에 새 둥지를 튼다고 한다. 합산하면 여섯번째 옮긴 출판사다. 마로니에북스는 2005년 오세영이 그린 만화 ‘토지’를 내면서 인연을 맺어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까지 펴낸 곳이다. 현재 어린이용 ‘토지’는 자음과모음에서 맡고 있으며, 최근 발견된 초기소설 ‘녹지대’는 고인이 처음 작품을 연재한 현대문학에서 나왔다. ‘토지’는 아직도 출판계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