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가를 찾아서] (5) 세계로 나가는 문

입력 2012-01-26 18:18


마가는 알렉산드리아로 유학 가 계시적 신앙과 수학을 배운듯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과 생명을 창조하셨으며 그 땅에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것이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구전을 통해 내려온 기억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그 사람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관계의 끈은 사랑이었다. 완전한 사랑이란 두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된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한 사랑이라는 관계의 끈은 언젠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

그러나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자유로 하나님을 떠나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쪽을 선택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신을 만들어 섬기며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폭력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서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천신만고 끝에 점령한 가나안 땅에 겨우 손바닥만한 거처를 마련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땅마저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가 북의 이스라엘은 BC 722 년 앗수르에게 패망했고, 남의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 25:7)

바벨론군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귀족들의 집을 불살랐다. 그는 귀족들과 기술자들을 바벨론으로 끌어갔고 예루살렘의 최후를 지켜본 선지자 예레미야와 나머지 빈민들은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놓았다. 바벨론군이 돌아가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였으나 다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잡으려 하자 그는 암몬으로 달아났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요하난에게 유다를 떠나지 말라고 지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그는 예레미야와 나머지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거느리고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렘 43:5∼7)

그들은 결국 지난날 야곱의 자손들이 내려가 살던 그 땅으로 다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나일강 하구에 정착하여 살던 유대인들은 알렉산더가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할 때쯤 제법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가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무제이온에 석학들이 모여들자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전통을 기반으로 그 문화의 중심에 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헬라어를 사용 중이었고 히브리어는 거의 잊혀진 상태였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이 다급해진 것이다. 그 일은 한 헬라인을 통해 시작되었다.

“왕이 특별히 가까이 하는 친구 가운데 아리스테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2∼2)

프톨레마이오스 Ⅱ세(BC 284∼246)는 그 부친이 설립한 도서관에 세상의 모든 책들을 모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왕은 아리스테우스로부터 유대인의 율법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도서관장 데메르티리우스 팔레리우스에게 말했다.

“그 책들은 유대인의 방언과 문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헬라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들었다.”(‘유대고대사’ 12∼1)

왕은 데메르리우스에게 명하여 유대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율법서의 번역을 부탁하는 서신을 보내게 했다. 서신을 접수한 유대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각 지파에서 6명씩 72명의 학자를 알렉산드리아에 파견해 번역에 착수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곧 라틴어로 ‘셉튜아진타’라고 부르고 LXX로 표기되는 70인역 성경이었던 것이다. 이 성경은 다분히 헬라적 정서가 개입된 번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문화가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세계로 나가는 문이 되었다. 이러한 바탕에서 유대인 출신의 대학자 ‘필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명문가에서 태어난 필로(Philo Judeus, BC 15∼AD 50)는 헬라의 철학적 이성과 유대의 계시적 신앙을 연결시키려고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저서 ‘우의적 해석’에서 그는 헬라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율법서의 내용을 헬라적 방법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은 이데아의 창조자’라고 한 것이 그런 사례였다. 또 ‘로고스’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한 해석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 거의 삼위일체에 가까운 해석을 하여 본토 유대인들의 배격을 받기도 했다.

“아브라함이 셋처럼 보이는 여행자들에게 쉬어 가기를 간청했을 때 그는 세 명이 아닌 한 명과 대화하는 것처럼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De Abrahamo)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성경과 함께 필로의 학문은 팔레스타인의 손바닥만한 땅에 갇혀 있던 하나님과 유대 문화를 세계로 안내한 문이 되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큰 업적은 동시에 두 가지의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하나는 유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헬라 문화 속에 사는 유대인들의 자부심을 일깨워 더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율법주의로 치닫게 했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할 때에도 이런 문화적 격변 과정에서 오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겪었다.

‘필로의 학문’과 ‘셉튜아진타’의 긍정적인 영향이란, 그 결과들이 역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마치 레일을 깔아 놓듯 통로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은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헬라인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를 왕래하시며 가르치셨던 복음을 헬라 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지중해 연안의 모든 국가와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헬라 문화 속에서 자란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된 ‘히브리서’의 저자로 알려진 ‘아볼로’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 18:24∼25)

AD 30년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체포되던 밤에 겉옷을 벗어던지고 도망한 마가가 그분의 부활과 승천을 못보았고, 그의 집 다락방에서 강림했던 성령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도 유월절과 그 다음날 안식일 사이에 예루살렘을 떠난 것일 수도 있다. 평소에 알렉산드리아로 유학가고 싶어 어머니를 졸라대던 그가 자신도 잡힐지 모른다는 것을 빌미로 당장 유학을 떠났다면 그 때쯤에는 대학자 필로도 알렉산드리아에 있었고,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의 후예들도 남아 있었을 것이며 마가는 역시 그들에게 수학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또 장편소설 ‘마르코스 요안네스’에서 알렉산드리아에 간 마가가 아볼로와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설정했다. 필자가 추측한대로 정말 마가가 알렉산드리아로 갔다면 같은 유대인 출신인 아볼로를 만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볼로는 이미 헬라어로 번역된 ‘셉튜아진타’를 공부했고, 율법서의 계시적 신앙이 헬라 문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필로의 강의를 통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가는 그가 잠깐 보았던 예수에 대해 말해 주고 또 그 예수가 체포되어 십자가를 지고 ‘슬픔의 길’을 걸어간 것에 대해서도 다 말해 주었을 것이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 7:28)

그것이 바로 헬라어로 번역된 율법서를 읽고 아볼로가 얻어낸 결론이었다. 그가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으나 그는 히브리서의 말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적어 놓았다.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지 않겠느냐”(히 12:9)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곧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김성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