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서 생명으로 어둠의 시대 길을 여는 詩篇…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입력 2012-01-26 18:21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황규관/실천문학사
1993년 전태일문학상에 시 ‘지리산에서’ 등 10편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황규관(44·사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서울 구로공단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구로노동자문학회 사무실에서 시 합평회에 참석하는 등 노동현장에서 직접 문학적 자양분을 섭취했다. 하지만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고 노동운동 대신 촛불 집회가 전위적인 운동의 한 형식으로 등장하는 등 ‘노동’ 개념 자체가 ‘공장 바깥’으로 확장된 현실에서 황규관은 노동시에 안주하지 않고 생명의 세계로 시적 전환을 시도한다.
“아들아, 밥은 그냥 뜨거운 거다/ 더럽거나 존엄하거나, 유상이든 무상이든/ 밥을 뜰 때 다른 시간이/ 우리의 몸이 되는 것/ 정신도 영혼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이게 다 밥 때문이다/ 더 먹어라, 벌써 비운 그릇에/ 한 숟가락 덜어주는 건/ 연민이나 희생이 아니라/ 밥은 사유재산이 아니니/ 내 몸을 푹 떠서 네 앞에 놓을 뿐/ 밥을 먹었으면 밥이 될 줄도 알아야지”(‘밥’ 부분)
시인은 ‘밥은 존엄하다’ 등의 진부한 수사(修辭)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현실인식은 존엄, 낙관, 이상, 진보라는 허울 좋은 말들에 속지 않고 오히려 펜을 똑바로 쥐는 데 있다.
“아침이 왔다/ 지난봄의 슬픔은 수선화 잎에/ 피어난 이슬이 되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먼지처럼/ 쌓여 다른 생이 되는 것이다/ 사랑도 꿈도/ 혼란스런 회한과 슬픔과 분노도/ 시간을 한 입 베어 물고 아침이 왔다/ 주어진 건 광야뿐이다”(‘아침이 되는 길’ 부분)
‘지난봄의 슬픔’이라는 과거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래서 모든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맑은 아침이라는 ‘다른 생’이 된다는 인식은 확실히 존재론적 자장 안으로 스며든다. 이러한 득의는 몇 몇 시편들에 집중되기보다 시집 전편에 매우 암시적인 방법으로 산포돼 있다.
“강물 앞에 서면 물결이 되고/ 숲에 들면 나무가 되는 순간이 있다// 어깨를 들썩이며/ 모든 시간이 울먹이고 꽃잎이/ 바람이 되는/ 어찌할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중략)// 싸움과 변명과/ 누적된 신음이 켜질 때/ 사랑과 믿음과 고독에/ 모두를 맡길 때/ 미지의 심연이 반짝이는/ 찰나가 있다// 어두운 물질에/ 웃음이 번지는 기적이 있다”(‘탄생’ 부분)
날이 아무리 어두워도, 절망이 아무리 날을 세워도 웃음이 번지는 기적. 이것이 시인 황규관이 어둠의 시대에 숨겨놓은 길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