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연우의 지혜
입력 2012-01-25 18:12
인기사극 ‘해를 품은 달’에서 연우역의 김유정양은 정말 깜찍하면서도, 감탄이 나올 만큼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어린배우의 절절한 연기 때문에 이번 연휴 동안 오랜만에 TV 앞에 앉아 폐인을 자처하며 그동안의 드라마를 한꺼번에 봤다.
세자 이훤과 연우가 궁에서 우연히 처음 만나던 날이 인상적이다. 카메라에 담긴 장면도 무척 예뻤고, 둘의 대화는 귀여운 모습이었음에도 자못 심오했다. 이훤이 세자인 것을 모르는 연우가 세자에게 “왜 남의 탓만 하느냐”고 질책하는가 하면 서자인 형 때문에 우울해진 것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도 한다.
이후 극 중에서 둘의 사랑은 지고지순하다. 판타지 사극이라 고증과는 상관없이 세자가 연우에게 이벤트도 해주는 등 알콩달콩 재미도 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총명한 연우가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세자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한다. 하지만 연우는 다시 세자에게 “자책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비극적이고 억울한 죽음을 겪은 연우는 앞으로 방송 분에서 기억을 잃고 다시 살게 된다고 한다. 오히려 기억을 잃는 것이 덜 고통스럽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세자 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진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 되어버렸다. 슬픔으로 넋을 잃은 세자에게, 세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형 양명조차 연우가 죽어갈 때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한다. 십대 후반의 세자가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그런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연우는 죽기 전 훤의 꿈에 나타나 다시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이 사극에서 총명한 연우는 지혜로운 대사를 많이 전해주는데, 그 중에 “남의 탓도, 자신의 탓도 하지 말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살아가면서 남을 함부로 비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자책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살다보면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 주위의 누군가가 잘못해서 내가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실상은 일렬로 서 있는 도미노 게임에서의 맥락과 같은 일일 수 있다. 나와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눈앞의 잘잘못이 아닌 일의 맥락을 확장해서 보는 이해심이 필요한 이유다.
연우는 형이 서자인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훤에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법을 만든 이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또 세자빈을 간택할 때에 “임금은 백성 위에 있지만, 임금 위에는 백성이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도미노의 맥락을 확장해서 볼 줄 아는 세자빈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서 빛나는 해를 품은 달, 연우 그 예쁜 아이가 말한 소박하면서도 큰 지혜를 꿈꾸어본다.
임미정 한세대 교수 하나를위한음악재단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