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현동] 노인문제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12-01-25 22:08
“급변하는 세태 시한폭탄 ‘애들 밥’도 중요하지만 ‘노인 밥’은 더 절실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영 편치 않았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조카는 아직 짝을 찾지 못하고 있고, 변변한 직장조차 없다. 무엇보다 아흔넷 노모가 마음에 걸린다. 연세가 연세이니 만큼 주름진 얼굴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아무런 용맹도 없는 노모가 더없이 외로워 보인다.
“내 걱정은 말거라. 그래, 넌 어떠냐? 애들은 잘 크고…” 귀가 어두워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모와의 통화 내용은 항상 똑같다. 당신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데도 그저 자식들 걱정뿐이다. 설을 쇠고 고향집 문을 나서면서 그런 노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시어른 모시면서 7남매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셨다. 가슴앓이도 많으셨다. 시부모 돌아가신 뒤에도 성정(性情)이 불 같은 남편 비위 맞추느라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셨다. 오로지 시부모와 남편,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고스란히 희생했던 노모다. 얼마 되지 않는 땅뙈기는 벌써 자식들 앞으로 넘겼다. 당신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자식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도 그저 안쓰러운지 얼굴을 쓰다듬는 노모의 손길은 까칠하기만 하다. 가끔 자식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내가 빨리 가야 하는데…”라는 노모의 넋두리에서 오히려 강한 생의 의지가 읽힌다. “올라갈게요. 잘 드시고 어디 편찮으시면 바로 전화하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너 나 할 것 없이 연세 드신 부모를 둔 자식들의 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이건 약과다. 명절이 더 서러운 노인들도 많다.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터질까 노심초사 키웠건만 명절에도 찾아오는 이 없다. 당신 몸 아파가며 낳은 자식이지만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살기 바빠 그렇겠거니 하면서도 어찌 서운함이 없을까.
불편한 진실은 또 있다. 노부모 모시는 문제를 놓고 크고 작은 다툼이 없는 집안이 없다. 차마 글로 옮기기 부끄러운 패륜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이쯤 되면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우리나라 독거노인은 104만 가구를 훌쩍 넘는다. (가족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는 연간 450명을 웃돈다. 이들의 대다수는 죽음에 이르기 전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노년을 보낸다.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 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서글픈 현실이다.
세태는 급속히 변해간다. 다 그런 거지라고 체념하기엔 앞날이 암담하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사람은 10명 중 3명을 약간 넘었다. 1998년에는 같은 질문에 10명 중 9명이 동의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너무 변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한국인들이 2030년 가장 희망하는 가족형태로 ‘부모 부양이 필요 없는 사회’를 꼽았다. 2030년이면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1955∼63년생)들이 70대가 된다. 부모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정치권의 태도다. 소위 대권후보라는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복지를 말한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 ‘바겐세일’하듯 복지정책을 쏟아낸다. 눈물겨울 정도다. 고용, 교육, 주거, 신용, 보육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다. 잘 먹여주고 잘 키워준다는 데 누가 싫어할까? 정치의식이 높고, 목소리 큰 집단을 염두에 둔 정책들이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선후가 있어야 한다.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 뒤에 피눈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사랑을 약속한 사람보다 그 약속을 믿은 사람에게 혹독한 청구서가 날아든다는 것을. 외환위기 때처럼….
그런데 노인복지는 후순위다. ‘애들 밥’도 중요하다. ‘노인 밥’은 더 절실하다. 현재 노인복지 수준은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노인문제 해결 없이 선진한국도, 지속가능한 대한민국도 불가능하다. 노인문제는 이미 ‘시한폭탄’이다.
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hd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