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코닥과 후지필름
입력 2012-01-25 18:01
파산 신청과 엄청난 영업이익. 세계 필름 시장의 양대 산맥이었던 ‘이스트먼 코닥’과 ‘후지필름’의 현 주소다. 필름업계 제왕이었던 코닥은 몰락한 반면 후발주자였던 후지필름은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다.
이 업계에서 코닥은 전설적인 선두주자였다. 코닥의 131년 발자취는 필름업계의 역사였다. 코닥은 1880년대에 롤필름과 조작하기 쉬운 코닥카메라를 만들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컬러필름의 대명사 ‘코다크롬’은 노래로 만들어져 더욱 유명세를 탔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 기술도 개발했다. 1976년 미국 시장 점유율은 필름 90%, 카메라 85%에 달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의 장래성을 간과했다. 디지털카메라가 주력 제품인 필름의 시장 점유율을 떨어뜨릴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천추의 한이 될 만한 천려일실(千慮一失)이 아닐 수 없다. 뒤늦게 뛰어든 소니, 니콘, 캐논 등 경쟁사들에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맥없이 내주고 말았다.
경영진의 오판으로 인한 결과는 참담했다. 직원은 14만5000명에서 1만7000명으로, 기업가치는 310억 달러에서 1억5000만 달러로 줄었다. 급기야 지난 19일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반면 후지필름은 확연히 달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후지필름은 값싼 필름을 무기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필름이 사라질 미래에 대비해 필름과 디지털 광학기술을 활용한 사업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의료기기, 검사장비, 복사기,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소재, 제약·화장품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후지필름은 2011년 회계연도에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예상한다. 필름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 된다. 그야말로 대변신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3년 독일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자”고 말했다. 양육강식의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임직원의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이 회장은 최근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2012’에서 “앞으로 몇 년, 10년 사이에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는 느낌이 들어 더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를 더 멀리 보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해 힘 있게 나가자”고 했다. 이 회장의 비장한 각오가 읽힌다. 코닥의 몰락과 후지필름의 비상을 지켜본 전 세계 기업인들은 이 회장의 발언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질 것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