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만에 곱게 단장한 장사도 ‘수줍은 봄마중’… ‘통영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
입력 2012-01-25 18:46
‘한려수도의 푸른 보석’ 장사도가 마지막 주민들이 섬을 떠난 지 20여년 만에 수수하면서도 곱게 단장한 섬처녀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거제도의 외도 보타니아와 쌍벽을 이룰 통영의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가 10여년의 조성공사 끝에 일반에 공개된 것은 지난 7일.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1.5㎞ 거리에 위치한 장사도는 행정구역상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한 낙도로 거제도 남단 근포에서 직선거리로 1㎞ 떨어진 길쭉한 섬. 폭 400m에 길이가 1.9㎞로 섬의 형상이 긴 뱀처럼 생겨 ‘진뱀이섬’으로 불렸다. ‘진’은 ‘긴’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경상도 말로 늬비로 불리는 누에를 닮아 늬비섬 혹은 잠사도라는 이름도 가진 장사도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 한때 주민이 14가구 80여명으로 늘자 외딴섬에는 죽도초등학교 장사도분교와 작은 교회도 들어섰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80년대 중반에 염소를 사육해 자립의 꿈을 키우던 섬 아이들과 선생님의 실화를 영화로 그린 ‘낙도의 메아리’ 현장이 바로 장사도이다.
한산도를 비롯해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 사이를 산책하던 유람선이 입구선착장에 닿자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구실잣밤나무 등 상록활엽수들로 빽빽한 원시림이 거센 바닷바람에 파도처럼 물결친다. 장사도에 자생하는 동백나무는 약 10만 그루. 숲 그늘 속에서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치솟은 줄기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듯 기괴하다.
해발 100m 남짓한 장사도는 여느 섬과 달리 길쭉해 섬의 등줄기 전체가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조망하는 전망대와 다름없다. 승리전망대 다도전망대 미인도전망대 부엉이전망대 등 섬 곳곳에 설치된 16개의 전망대에 서면 비진도 욕지도 한산도 소매물도 국도 대덕도 소덕도 가이도 소지도 대·소병대도 등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은 물론 멀리 일본 대마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는 철저하게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됐다. 동백나무 한 그루도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허브가든에서 출구선착장까지 조성된 나무데크 탐방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구불구불하다. 온실과 학습관 등 하얀색 건물들도 민가와 밭이 있던 공터에 건축됐다. 관람을 위한 탐방로도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지게를 지고 다니던 소로를 이용했을 정도.
섬 아이들이 다니던 장사도분교는 여인이 누워 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의 거대한 돌조각이 위치한 중앙광장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숲 속에 위치한 장사도분교는 한 칸짜리 건물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낡은 풍금이 어울리는 교실에서는 섬 아이들의 동요가 흘러나올 것 같은 환상에 젖게 한다. 손바닥 크기의 운동장에는 모과나무를 비롯해 희귀한 분재 수십 점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붉은색 무지개다리는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를 대표하는 아이콘. 다리 밑에는 장사도의 옛 모습과 해상공원 조성 과정을 사진으로 전시한 필름프로미네이드가 위치하고 있다. 무지개다리 끝의 달팽이전망대에서 보는 장사도와 인근 섬들은 한 폭의 그림.
장사도 서북단에 위치한 승리전망대는 한산도의 부속섬인 죽도를 비롯해 비진도와 용초도 등 통영의 여러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 1592년 6월 13일 새벽에 판옥선 등을 이끌고 여수를 출발한 충무공 이순신은 승리전망대 앞 바다를 거쳐 16일 낮 거제도 옥포만에서 왜선 26척을 격침함으로써 임진왜란 최초로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선인장을 비롯해 다육식물과 풍란 등이 전시된 반달 모양의 온실은 장사도를 대표하는 건축물. 전망대를 겸한 옥상에는 하얀색의 거대한 하트 두 개와 펭귄 조각상이 설치돼 연인이나 어린이들이 사진 찍기에 좋은 곳. 주민들이 살던 집을 복원한 섬아기집과 학습관, 미로공원을 거닐다 보면 60m 길이의 동백터널을 만난다.
한겨울에 피어 더욱 청초한 동백꽃은 벌써 꽃송이째 뚝뚝 떨어져 바닥을 뒹군다. 동백꽃은 여느 꽃과 달리 낙화했을 때 더 아름답다. 탐스런 꽃송이가 목이 부러지듯 떨어져 풀밭을 뒹굴면서도 해맑게 웃는 모습은 동백만의 매력. 동백꽃이 만개하는 3월에는 동백터널 바닥이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 장관을 이뤄 감히 발걸음을 들여놓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장사도의 섬 한가운데에는 큰바위얼굴을 연상하게 하는 12개의 거대한 브론즈 두상이 세워져 있다. 고구마 밭에 조성한 야외공연장을 감싼 브론즈 두상은 책, 별자리, 쓰레기, 건축물, 성, 종교 등을 소재로 한 김정명 작가의 작품들로 얼굴은 로마의 황제들을 닮았다.
예술의 고장 통영답게 장사도에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과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의 ‘황혼에 서서’가 앞뒤로 새겨진 시비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유치환은 통영여중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중 홀로 된 가사교사 이영도에게 20여년 동안 연서 5000장을 보낼 정도로 플라토닉한 사랑을 했던 인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로 시작하는 ‘행복’도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보낸 연서. 관람객이 편지를 써서 시비 옆에 세워진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한려수도의 푸른바다를 건너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달된다.
푸른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질 때마다 동백꽃이 서러운 듯 뚝뚝 떨어져 땅바닥을 뒹구는 장사도. 섬처녀로 거듭난 장사도가 따뜻한 남쪽나라 한려수도에서 수줍은 듯 첫 번째 봄을 기다리고 있다.
통영=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