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국교회 이끄는 기독교학회] ③ 한국문화신학회
입력 2012-01-24 18:19
토속문화 속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재정립
한국 땅에서 신학하는 일은 언제나 문화적 주체의 물음을 낳는다. 70∼80년대 한국신학의 주체 물음은 크게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을 필두로 시작됐다. 토착화신학은 복음과 토착문화간의 상관성 속에서 토착문화의 주체성이 가능한지를 물으며 시작됐다. 민중신학은 근대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의 태동속에서 복음의 주체는 ‘가난한 자의 주체’라는 명제를 한반도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 가운데 형성됐다. 토착화신학이 복음이 갖고 있는 진리를 자생적 기독교로 체화시키려 했다면, 민중신학은 부정의한 체제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려 했다.
‘문화신학’은 이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 간의 차이와 틈, 그리고 갈등과 긴장을 ‘문화’라는 공동의 장에서 창조적으로 승화해 내려는 한국신학자들의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학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것이 한국문화신학회이다. 이 학회는 1994년 6월4일 유동식 선생을 고문으로, 초대 심일섭 회장과 부회장 김경재 교수, 김광식 교수, 총무 이정배 교수, 서기 김재진 교수, 회계 허호익 교수를 중심으로 출범했다.
고문을 맡은 유동식 선생은 한국문화신학회의 원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유 선생은 한국 문화의 뿌리를 ‘풍류도(風流道)’의 영성에서 찾았으며, 이를 ‘한 멋진 삶’으로 압축하는 자신만의 문화신학을 발전시켰다. 초기 유동식 선생의 풍류신학은 윤성범 교수의 토착화신학과 같은 소재를 다른 방향으로 추구하고 있었다. 윤성범의 토착화신학은 복음의 토착화라는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면, 유동식의 풍류신학은 복음이 토착문화와 만나 형성하는 문화적 상관성에 지향점을 갖고 있었다. 두 신학의 공통점은 한국 기독교인에게 ‘주체성’의 자리를 찾아주려는 데 있었다.
당시 한국적 주체의 발견은 기독교 신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공통 과제였다. 다소 다른 맥락에서 현영학 교수는 ‘민중신학의 주체성’을 우리 민족의 ‘탈춤’ 속에서 찾아가려는 노력을 경주하기도 했다. 변선환 교수의 종교해방신학은 토착의 다종교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기독교적 주체성의 창출을 모색했고, 김광식 교수는 복음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변화하는 문화적 자생성과 어떻게 조화와 공존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늦게 출범한 신학회지만 활약은 놀랍다. 지금까지 ‘한국 종교문화와 그리스도’ ‘한국종교문화와 기독교’ ‘한국종교문화와 문화신학’ ‘한국문화신학 방법론에 대한 반성’ ‘한국문화와 예배’ ‘ 종교와 과학’ ‘종교와 사이버 문화’ ‘종교와 예술’ ‘개신교와 조상 숭배’ ‘한국문화신학의 새로운 모색’ 등을 주제로 다양한 학술행사를 벌여왔다.
최근 한국의 문화신학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21세기가 열리고 대중예술 분야가 ‘한류’라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신학도 주체성의 고민에 기초한 신학적 한류가 가능한지를 묻게 된 것이다. 특별히 ‘한류’를 신학적 주제로 삼아 세계와 세계 교회에 제안할 수 있는 한국적 신학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한류와 정의’를 주제로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와 함께 ‘한류, 종교에게 묻다’라는 제목의 강연들을 주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근자 한국문화신학회의 과제는 한류의 신학, 한국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독립된 연구주제로 설정해 분석하는 대신 문화를 구성하는 여러 연관된 측면들을 통전적으로 고찰하고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다양한 신학의 흐름들이 문화신학 연구라는 우산 아래 포괄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문화신학회의 역할과 존재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박동수 기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