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태정] 앞서 걷는 자

입력 2012-01-24 17:49


살아가면서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혹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보다 앞서 걸으며 나아갈 방향이나 목적을 실현하도록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인생에 큰 행운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멘토(Mentor)라 부른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이는 트로이전쟁에 출정하면서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친구인 멘토에게 맡긴다. 멘토는 오디세이가 20년 전쟁에서 귀향할 때까지 아들 텔레마코스의 선생님이자 친구, 아버지 역할을 하며 훌륭한 리더로 키웠다. 이때부터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또는 지혜와 신뢰로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 혹은 스승의 의미로 멘토가 생겼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상대방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멘토링 시스템이 붐이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기업과 같은 조직 내에서 관계가 맺어진다. 방송에서는 서바이벌 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심사위원들이 멘토가 되기도 한다. 청춘을 위로하는 책도 알고 보면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향해 멘토를 자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멘토 시스템마저 상업성에 빠진 것 같아 안타깝다. 청춘을 향한 책들도 잠시 위로가 될 뿐 과연 그 글을 읽는다고 해서 해결이 될까. 젊은 세대의 심지가 약하니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의지가 박약하니 멘토나 커뮤니케이션의 기회가 있어도 놓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내 친구가 만난 교수님은 멘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경이로웠다. 전공과 다른 청강시간에 뵌 교수님은 그분으로서는 마지막 강의를 했다. 본인의 인생스토리를 마케팅 관점에서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강의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친구는 전공을 바꿔 현재 그분과 닮은 길을 걷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명 중 한 명일 뿐인 자신이었지만 졸업 후 7∼8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계가 지속된다고 하니 멋진 멘토-멘티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친구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고민에 대해 상의하면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멘토를 만난 것이 대학생활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지금은 일흔이 넘은 백발의 노인이지만 여전히 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고속도로에서 앞서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처럼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역사적 인물에게는 늘 그들을 훌륭하게 이끌어준 멘토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희망을 품게 하고, 한 계단 도약하기 위해 도움 받을 수 있는 멘토는 꼭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소통하고 건강하게 교류할 수 있는 분들, 나보다 앞서 깨우침을 주는 가족, 친구, 선배, 지인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 이번 설날에도 그분들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피하거나 외면하는 바람에 놓치지 않았는지.

안태정(문화역서울284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