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용의 해 맞은 중국

입력 2012-01-24 17:47


중국 남부 광둥성 중산(中山)에서 서부 쓰촨성 쑤이닝(遂寧)까지는 대략 2000㎞에 달한다. 서울과 부산 간 거리의 5배에 약간 못 미친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춘제(春節)를 맞아 오토바이로 4일 동안 이 길을 달려 귀향하는 농민공(農民工) 일행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줬다. 도중에 허기도 채우고 여관에서 눈도 붙여야 하는 고달픈 여정. 그러나 하나 같이 설레는 표정이었다.

객지에서 힘들게 돈 벌어 일년에 한 번 고향 가는 이들 농민공들에겐 춘제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이번 춘제 때 광둥성에서 오토바이로 귀향한 농민공은 40만명이나 된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에서 ‘춘윈(春運)’은 춘제 전후 40일 동안에 걸친 귀성객 특별운송기간 또는 춘제 앞뒤로 나타나는 대규모 인구 이동 현상을 뜻한다. 올해 특별운송기간은 지난 8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다. 당국은 이 기간에 연인원 31억5000만명 가량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전체 인구(13억5000만명)가 두 번 이상 이동한다는 계산이다.

과거에는 춘제 동안 전 세계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움직인다고 했으나 이제 절반 가까운 사람이 이동한다고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걸 반영하듯 귀성 인구는 작년 보다 9% 이상 늘었다.

TV에서는 그야말로 태평세월을 구가하는 ‘격앙가’가 울려 퍼진다. 설 전날 저녁인 추시(除夕)에 CCTV에서 방송되는 설 특집 쇼 ‘춘완(春晩)’은 올해 30주년을 맞아 더욱 주목을 끌었다. 개혁 개방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2년에 처음 선보인 춘완은 이제 중국인이 가족과 함께 설 음식을 나누며 시청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설 당일 베이징 시내 톈탄(天壇)공원에서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의식이 용의 해를 맞아 화려하게 진행됐다. 설 첫 날 베이징에서 터뜨린 폭죽 값만 5억4000만 위안(약 966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입이 벌어진다.

몇몇 장면만 보면 중국 인민들은 이미 세계 제2 경제대국에 걸맞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농민공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 발전은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농민공들의 저임금은 그 동안 외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는 주된 배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실제로 춘제를 맞아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는 일부 도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도 나타났다.

일부 학자나 법률가들은 “농민공이란 호칭에 이들을 멸시하는 뜻이 포함돼 있다”며 ‘신스민(新市民)’ ‘신찬예궁런(新産業工人)’ ‘위안젠저(援建者)’ 등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에 대해 농민공들의 권리가 도시민들과 동등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름만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수출 부진에 따른 대안으로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 소비 수요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주(住) 행(行) 학(學)으로 대표되는 도시화다. 즉 농촌에 대한 주택, 교통,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농(都農)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농촌의 소비 수준도 높인다는 취지다.

지난해 광둥성에서 벌어진 ‘우칸촌 사태’에서 보듯 중국 농촌 주민의 의식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중국 경제가 앞으로 농민공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베풀지 주목된다. 이는 올 가을 들어설 5세대 지도부 앞에 던져진 체제 안정을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