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영적 모험이다. 고독은 영혼의 순례요, 내면세계를 향해 들어가는 영적 여행이다. 고독의 문을 열고,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외로움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고독이란 단어는 반가운 단어가 아니다. 사람은 외롭다. 외롭지 않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실존 자체가 외롭다. 외로움이 싫어 결혼하지만, 결혼 후에 더욱 외로워진 사람도 많다. 외로움은 현대인의 아픔이요, 고통이다. 그렇지만 외로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외로움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준다면 그 외로움은 검은 보자기에 싸인 선물과 같다.
외로움이 그냥 홀로 있는 것이라면, 고독이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과 홀로 있는 것이다. 영성 생활이란 외로움에서 고독에로의 여행이다. 고독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요한 고독을 만난다. 고요한 고독은 고요한 침묵에서 시작된다. 고독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침묵에서 비롯된다. 고요한 침묵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소용돌이치는 물이 잔잔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내면이 잠잠해지려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한 고독은 영혼의 지복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고요한 고독의 순간에 우리는 거짓 자아를 벗어버리고 참된 자아를 만나게 된다. 고요한 고독 속에서 진실한 언어를 만나게 된다. 브래넌 메닝은 “고요한 고독이 참 언어를 빚어낸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요한 고독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소음 속에서 들을 수 없는 사랑스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고요한 고독 속에 갖는 하나님과의 침묵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의 가치를 모른다면 아직 영성의 깊은 맛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신학자 에드워드 쉴레벡스(Edward Schillebeeckx)는 “계시종교에서 하나님과의 침묵은 그 자체로, 그 자체를 위해 가치가 있다. 단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자로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 고요한 고독의 시간을 갖는 것은 거룩한 낭비다. 그 거룩한 낭비를 통해 영혼은 힘을 얻는다. 거친 세상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낭비의 시간을 갖는 영혼은 얼마나 복된 영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