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세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영화 ‘부러진 화살’ 제2 도가니 되나

입력 2012-01-20 18:35


“재판은 재판장이 합니다.”

“법대로 하셔야 합니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재판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고 판사에게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으라고 호통치는 피고인. 국민이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법정 풍경은 아니다. 영화 속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있었던 재판을 사실에 가깝게 재연했다는 영화이기에 논란이 뜨겁다.

2007년 ‘석궁테러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부러진 화살’이 19일 개봉 첫날 전국 248개 스크린에서 4만4976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우리 사회의 성역으로 여겨지는 사법부의 부조리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영화 ‘도가니’와 맥을 같이한다. 그래서인지 사법부는 이 영화가 제2의 도가니 파동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석궁테러사건’은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했다가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교수가 대학을 상대로 ‘교수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으나 항소심에서 기각한 박홍우(현 의정부지법원장) 부장판사를 석궁으로 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된 사건이다. 김 전 교수는 징역 4년이 확정돼 지난해 1월 만기 출소했다.

대법원은 영화가 사법부를 겨냥하자 ‘부러진 화살이 증거물로 제출되지 않은 이유’ ‘와이셔츠에 핏자국이 없는 이유’ 등 영화에서 의문점으로 지적된 내용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 및 근거를 A4용지 2장 분량으로 정리해 지난 11일 각 법원 공보판사에게 발송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법원이 언론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지적하자 없던 일로 했다. 대법원은 출입기자들에게 단체 관람을 하자고 제안했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이마저도 취소했다.

영화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박 부장판사를 증인으로 신청하고 혈흔 감정을 요청하는 변호인 측 요구를 재판장이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장면을 부각시킨다. 여기에 맞서 홀로 법전과 씨름하고 법치국가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며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힘겨운 싸움을 통해 사법부의 지나친 권위를 독재라고 고발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화 내용에 픽션이 상당히 섞여 있어 오해 소지가 있다”며 “부러진 화살이라는 제목부터 증거가 조작됐다는 피고인 주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 변론을 맡았던 박훈(46) 변호사는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논쟁이 있는 걸로 아는데 재판 장면만 놓고 보면 거의 실제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을 묘사한 부분이 왜곡됐다는 사법부의 비판에 대비해 공판 속기록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놨다고 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