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삶의 풍경] 화가로 산다는 것.

입력 2012-01-20 18:04


그림만을 위해 산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미술대학 입학 후 그림이 뭔지도 모르며 그림 속에 파묻혀 살기를 원했지요. 그러나 집안이 풍비박산 난 후 약간의 객기와 풍류, 그리고 탄식을 안주 삼아 세상에 대한 분노로 일관하던 시절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못난 성정이었습니다. 그 후 세상에 돌팔매질 대신 스스로를 질책하고 부정 대신 긍정으로 보니 인심도 후해지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배워가기 시작했지요.

어린 시절 수화(樹話) 김환기 선생과 남정(藍丁) 박노수 선생이 제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만, 이제는 고흐나 벨라스케스, 뭉크를 넘어 이 세상 모두가 그림의 스승이고 동식물뿐 아니라 길거리 잡초도 정신의 스승이더군요. 소중함이 깃들지 않는 곳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지천명이 되었습니다. 철들기를 서두르지 않고 붓으로 춤추는 일에 더 매달릴 작정입니다. 설 세시풍속에 다짐은 진짜 환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그림도 한층 풍성해질 테니까요.

그림·글=김영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