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태일 (15) 88 서울올림픽으로 눈뜬 中 조선족 복지선교
입력 2012-01-19 18:16
한국사랑밭회를 세우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발길을 중국으로 이끄셨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까지 중국의 조선족들은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사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행사가 중국 전역에 TV로 방영되자 조선족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그러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중국의 개방과 함께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은 너도나도 한국에 가서 일하는 것을 꿈꾸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해 조용한 조선족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국에 보내준다며 1000만원, 2000만원씩을 받아 챙겼다. 그들이 10여년 동안 안 먹고 안 쓰고 모아야 되는 거금이었다. 이때 한 선교사의 소개로 옌지(延吉)를 가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 조선족들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다. 내 어릴 때 고향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룽징(龍井)의 해란강과 비암산을 보고 난 다음 투먼(圖門)에서 북한을 바라보자니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애국심과 민족애 등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옌볜(延邊)지역을 다니며 수많은 나눔의 행렬을 이어갔다.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쓰시는가 싶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필요한 곳에 이 몸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한번 시작하면 내 몸의 진액이 다할 때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을 품게 된 나는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물론 나 혼자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다.
60∼70년대 한국 농촌에서 소가 재산이었던 것이 생각나 그 곳 어려운 가정에 소를 사주었다. 옌지시에 흥안향 경로원을 지었고, 훈춘(琿春)시에 경신진 경로원을 지었으며, 수재원을 설립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수 학생을 매년 70명씩 뽑아 학비와 생활비 일체를 지원했다. 생활이 곤란한 500가정 1500명에게 매월 생활비를 지원했다. 옌지에 사단법인 봄비 애심회를, 훈춘에 사단법인 햇빛 애심회를 각각 설립했다.
또한 한국에서 중국 유학 붐이 일어난 2000년대 들어서 베이징에 수재원을 만들어 한국의 고아와 편모가정 아이들 7명을 모아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부하도록 했다. 중국의 지친 영혼들을 위해 한인교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유학생과 한인 사업가들이 이 교회에서 성령체험을 하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의 열정을 기억하셨는지 중국인 양아들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 진건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가난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아파트 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인 같지 않게 눈에 띄게 친절하고 나의 어릴 때 꿈과 같이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나는 그를 수재원에서 생활하며 대학공부를 하도록 했다. 그는 친절하고 순종적이면서도 의지 또한 강했다. 내가 중국을 19년 동안 왕래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보람은 바로 진건이를 자립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중국에 가서 그를 만나게 되면 참으로 든든하고 기쁘다.
지난주 함께하는 사랑밭과 관련 기관 및 단체에서 일할 7명의 집사를 임명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아픔을 참고 극복한 뒤의 열매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앞을 가렸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씀이 그 밑바탕이 됐다. 공황장애로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고통을 겪기도 했다. 매일 밤 온 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발라야 하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셨다.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저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질 뿐이다. 아, 나의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위로가 되시는 나의 하나님. 나는 전심으로 나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