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와타나베 선생의 충고
입력 2012-01-19 18:28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학교폭력 소식에 참담함을 느낀다. 폭력은 항용 힘이 있는 곳에, 사람이 무리지어 있는 곳에 존재해 왔지만, 요즘 TV를 통해 확인하는 난폭성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사랑과 우정 대신 주먹이 오간다는 것은 비극이다. 휴대전화를 빼앗았다고 학생이 선생에게 칼을 들이대는 장면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마땅한 대책도 없다. 가정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나 학교를 욕하고, 학교는 부실한 가정교육을 탓한다. 미디어와 같은 사회환경이 아이들을 거칠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많다. 책임의 행방이 묘연하다. 모두의 책임이거나 아무 책임도 아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허망하다. 규제와 단속, 책임 지우기가 전부다.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다.
언어결핍이 학교폭력 초래
정말 속수무책인가?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읽은 일본 지식인의 글은 큰 공감을 낳았다. ‘북&’이라는 출판전문지에 실린 와타나베 에이키(일본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 전무이사) 선생의 글인데, 독서의 힘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책읽기를 권장하는 글은 대체로 설명력이 부족하다.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는 사람도 많고, 영상시대에 듣는 활자 이야기는 따분하기도 하다. 전자기기를 끼고사는 젊은이들에게 ‘죄와 벌’ 같은 장편소설이나 인문 고전을 읽도록 설득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와타나베 선생은 달랐다. “지난해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피해지역 주민들이 옷과 식료품 다음에 원한 것이 책이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일본인의 오랜 독서체험이 재난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침착한 마음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책이 평정심 유지와 치유의 효과를 내고, 나아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그는 독서기피현상이 사회 열등화와 문화변질을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자기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언어를 통한 자기표현을 못하게 되었을 때 남겨진 방법은 무엇일까? 폭력밖에 없다.” 문자의 기피는 단순한 문해력 결손이 아니라 자아를 잃게 하는데, 젊은이들의 마음에 공백이 생길 때 메워주는 것이 독서효과다.
인용이 좀 길어졌지만, 2010년 ‘독서의 해’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아침에 날씨 이야기 대신 “어젯밤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로 인사하고, 명절이 다가오면 “어떤 책을 선물할까”로 고민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5년 뒤에 다시 ‘독서의 해’ 행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서로 마음의 공백 메워야
이제 우리를 돌아볼 차례다. IT 강국이라는 이름 아래 책읽기 문화가 사라지는 현실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언어는 기술의 하부단위로 치부되는 경향이다. 지난해 성인독서율은 65.4%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책읽기는 상급학교로 갈수록 줄어든다. 독서의 질도 수준 이하다. 부모와 선생이 책을 읽지 않는데, 어찌 아이들만 나무랄 수 있겠나.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올해는 정부가 정한 ‘독서의 해’다. 그런데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말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3월초에 사업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신발 끈 매는 데 3개월 걸리고, 몸 풀고 나면 상반기가 훌쩍 지나갈 것이다.
여기에다 국회는 ‘독서의 해’ 행사에 필요한 예산 45억6000만원 가운데 5억원만 반영했다고 한다.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학교폭력으로 사회가 온통 몸살을 앓고 있는 때에 정부와 국회, 민간이 책을 놓고 힘을 모을 기회를 놓쳤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