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재삼] 곤충연구가 新藥시대 앞당긴다

입력 2012-01-19 18:27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는 부상당한 병사들의 치료를 위해 환부에 구더기들을 사용했다. 구더기가 상처 난 부위 즉, 썩거나 죽어가는 부위를 먹어치우면서 입에서는 항생물질을 뿜어 상처가 아무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치료약이 부족했던 당시, 병사들의 외상에 구더기를 치료제로 이용했다. 그러던 중, 1900년대 페니실린 발견과 함께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구더기는 귀하신 자리에서 밀려나 혐오 생물로 다시 전락했다.

그러나 최근 항생제 남용으로 내성이 생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의학계는 다시 구더기를 이용한 치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요즘 미국 병원들은 당뇨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절단 수술을 받은 환부의 빠른 회복을 위해 구더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영국에서는 일반적인 치료가 어려웠던 질병에 구더기를 치료제로 쓰는 것을 연구 중이다. 당뇨병으로 다리에 발생하는 합병증인 ‘궤양’에 구더기를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신약의 보고(寶庫)로 곤충이 뜨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기술 및 신물질 분석기술의 발전과 함께 신의약품 개발의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학자에 의해 곤충으로부터 신약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부산대 이복률 교수팀은 갈색거저리 애벌레에서 멜라닌 합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멜라닌은 무척추동물들이 가진 프로페놀오시다제라는 효소로부터 합성되는 물질로, 박테리아나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하고 살균 작용을 하는 중요한 생체방어 물질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박호용 박사팀은 거미가 먹이를 섭식, 소화할 때 분비하는 매우 강력한 소화액이 생체분비와 함께 장내 미생물에 의해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아울러 무당거미로부터 고효율 단백질분해효소를 세계 최초로 분리했다. 아라자임이라는 이 효소는 독성이 없고 천연항생 및 소염활성도 지니고 있어 광범위한 산업분야에 활용이 가능하다.

농촌진흥청 연구팀 역시 애기뿔소똥구리 유충으로부터 고기능성 항균 물질인 코프리신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물질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던 세균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기존 항생제 역할을 하던 암피실린보다 상처치료 및 피부 재생효과가 우수했다. 특히 매우 치명적인 감염성 질환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Cd) 세균이 유발하는 급성 위막성 대장염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확인됐다. 결과는 이 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항균물질과 항암화학요법 저널’에 게재됐다.

그동안 우리가 싫어하고 꺼려왔던 곤충을 이용한 신약 개발로 곤충의 새로운 가치가 떠오르고 있다. 신약 개발의 보물 창고, 곤충의 다양한 활용방안을 통해 징그럽고 쓸모없는 것이 아닌 황금벌레로 거듭나며 바이오신약개발의 선두주자로, 곤충산업 발전의 눈부신 성장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황재삼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