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음악에 대한 斷想

입력 2012-01-18 18:44


늦은 오후 나른해질 때는 쇼팽의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좋다. 화려한 오월의 자정 이후, 온 세상이 잠든 시간에는 대금 연주를, 금요일 밤 종로 뒷골목을 거닌다면 7080의 노래들을 원하게 된다. 가끔 뉴욕 브로드웨이가 생각날 때는 루이 암스트롱을 은근히 기대한다. 그리고 삶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올 때는 베토벤의 교향곡과 브람스의 레퀴엠(진혼곡)이 천국으로의 귀향을 꿈꾸게 한다.

그렇게 살다가 문득 마음이 허락하여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와 바람 소리를 들을 때면, 그러한 소리야말로 최고의 음악이란 생각이 든다.

동양의 역사 속에서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던 흥미로운 예가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사자성어, 사면초가의 이야기이다. 사면이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인데, 한나라가 전장에서 의도적으로 들려준 초나라의 노래 때문에 초나라 군사들이 마음이 약해져서 고향으로 도망가거나 많은 병사들이 전투의지를 잃게 되어 초나라가 전쟁에 진 이야기를 말한다.

음악은 초나라 쪽엔 치명적인 패배 원인을 제공한 셈이었고, 한나라 쪽에선 기가 막힌 전략에 사용할 수 있었던 좋은 도구였으리라. 무엇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서술자의 관점에 따른 판단이겠으나, 음악이 개인의 내부를 건드리는 영향력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고대 동양이나 서양의 철학자들은 음악(예술)을 인간의 도리라든지 이데아의 표현, 물리나 수학처럼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동양에서 군자는 악을 알아야 한다고 했고, 그리스 철학자들은 음악이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예술이 도덕적 인간으로 키우는 데 있어서 무척 중요하며, 잘못 사용되었을 때는 정신을 어지럽게 하거나 미혹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 정규 음악교육이 없어진 데 대한 우려와 함께, 방과후학교와 사회 곳곳에서 많은 오케스트라가 생기고, TV에선 재미있는 합창과 좋은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문화예술이 갖는 고부가가치의 경제적 측면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예술과 예술정책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본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 존재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다. 그러나 사면초가처럼 전술적이거나 경제·정치적 가치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서 자신을 만나게 하는 음악이 되도록 예술정책이 시행되길 기대해 본다. 일상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소모하지만, 문득 내 자신과 투명하게 만나는 순간 빗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이 준 진실한 음악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임미정 한세대 교수 하나를위한 음악재단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