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복싱
입력 2012-01-18 18:31
복싱은 과격한 스포츠다. 사각의 링 안에서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벌이는 운동이지만 간혹 사망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위험하다. 이 때문에 가난하고 배고픈 젊은이들이 행운을 잡기 위해 뛰어드는 헝그리 스포츠라고 불린다. 하물며 여자들에게는 복싱 자체가 오랫동안 허용되지 않았다.
뉴스위크 최신판은 여자복싱이 올해 런던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각 나라가 메달 획득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장면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영국의 경우 15년 전만 해도 여자복싱이 불법이었으며 체육관에서는 재미로라도 여자들은 절대 스파링을 못하게 했다. 영국은 자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겨냥,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끈질긴 로비를 벌여 마침내 여자복싱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게 만들었다.
인도도 여자대표팀에 집중 투자해 두 아이의 엄마인 메리 콤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는 강 펀치의 소유자인 소피아 오치가바, 이리나 시네츠카야 같은 막강한 인물을, 중국은 렌 칸칸 같은 불세출의 여성 복서를 보유하고 있다. 쿠바는 “여성들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해야지 그들이 머리에 펀치를 맞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올림픽 복싱경기 출전을 단호히 거부했다.
프로복싱에서는 1966년 6월 25일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물리치고 세계복싱협회(WBA) 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함으로써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 정상 도전에 성공했다. 아버지와 함께 진공관 라디오를 통해 중계방송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김 선수의 세계 제패 소식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빅 뉴스였다.
프로 복싱계의 신화적인 경기는 단연 1977년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전이다. 홍수환 선수가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4번 다운당한 뒤 다시 일어나 KO승을 거둬 챔피언이 됐다. 그의 4전5기 정신은 많은 복서들에게 모범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챔피언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대량으로 수확하며 아마 복싱도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인기 절정이던 프로복싱은 신종 격투기 등에 팬을 뺏긴 뒤 최근 집행부의 분열로 더욱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권투위원회(KBC)를 제치고 비상대책위를 통해 새 집행부를 꾸린 홍수환·유명우씨가 예전 집행부와 법정싸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링 안의 싸움을 링 바깥으로 끌고나간 것이다. 빠른 시일 내 사태를 수습해 세계를 호령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길 기대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