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쿨이 해법이다] 때린 학생도 맞은 학생도 왕따 학생도 ‘우리’를 배려하는 아이로 변했다
입력 2012-01-18 15:55
충북 청명학생교육원 가보니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흔들리며 피는 아름다운 작은 꽃들이 분명했다. 더벅머리에 쫄바지를 입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지만 표정들은 한결같이 밝았다. 낯선 방문객을 한 번쯤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이내 또래들끼리 재잘거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충북청명학생교육원이 위스쿨(위기학생 치유전문교육기관)로 지정돼 문을 연 지 1년5개월 만에 위기학생 문제의 해법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폭력, 자살충동, 인터넷게임중독 외톨이, 비행 등 각종 위기 학생들이 이곳에서 6개월 이상 생활한 뒤 성공적으로 예전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갔다. 이 학교를 거쳐 간 50여명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학업중단 위기를 벗어났다.
지난 17일 청주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청명학생교육원을 찾아가자 중학교 1, 2학년생 27명이 한창 수업을 받고 있었다. 충북 도내 120여개 중학교에서 위기 정도가 가장 심한 학생들로 판정된 학생들이었다. 절반 정도는 학교폭력 가해자 출신이고, 나머지 절반은 학교폭력 피해자이거나 인터넷게임중독 외톨이들이라는 게 박창호(52) 교학부장의 귀띔이었다. 정원 40명 중 13명은 고교 진학을 위해 지난달 가정으로 돌아갔다.
청명학생교육원은 충북교육청 직속기관이다. 교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출신이 섞여 있지만 생활공간은 분리돼 있다. 가해학생 출신들은 주로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외톨이나 피해자 출신 위기학생은 단독주택처럼 생긴 가정형 생활관에서 지낸다. 밤에도 교사들이 아이들 옆방에서 잠을 자며 세심하게 보살핀다.
청명의 수업시간표는 일반 학교와 많이 다르다. 일과는 오전 9시 ‘아침모임’부터 시작된다.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손을 잡고 ‘공동체생활철학’을 한 목소리로 암송한다. ‘나는 주위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안정된 환경 속에서 쉴 수 있도록 여기에 왔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내 비밀을 털어놓을 때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내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두려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혼자가 될 것입니다.…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청명이 학생들을 배려한 장치는 커리큘럼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국민공통기본교과 과정을 가르치기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모두 편성했지만 일반 학교보다 쉽게 가르친다. 매일 오전 3교시는 체육시간이다.
‘참만남’은 분노조절능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기 위한 이 학교만의 차별화된 수업이다. 참만남은 또래 판정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학생이 써 낸 쪽지를 읽으면서 시작된다. ‘아까 □□이가 어깨를 치고 지나갈 때, 화가 나서 얼굴을 때리려고 했어.’ 그러면 그 학생이 해명을 하거나 사과를 한다. 때로는 폭력 피해자가 용감하게 폭로하기도 한다. 침묵을 지키면 판정단이 나선다. “너, △△, ○○도 괴롭혔잖아. 왜 말 안 해.”
인지행동 수업에서는 생각 바꾸기를 연습하고 대화기술을 익힌다. 심리상담사인 김영태(33) 교사는 “위기학생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거나 해치려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 편”이라며 “적극적 경청하기, 상대의 발언을 기억한 뒤 질문하기 등을 통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고치고 사회성을 기르는 훈련을 하는데 효과가 꽤 좋다”고 말했다.
야외활동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지난해에는 설악산과 한라산 등정에 이어 히말라야에도 도전했다. 예전 다니던 학교의 ‘짱’이었던 구현(가명·16)이는 중도 포기했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친구들이 목적지 등정에 줄줄이 성공한 모습을 보고는 이후부터 눈에 띄게 겸손해졌다.
지난달 9일부터 5박6일간 필리핀 빈민가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대인기피증이 심한 성호(가명·15)가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해서 화제다. 인터넷게임 중독판정을 받은 성호는 필리핀 빈민가에서 또래 어린이를 만난 뒤 “내가 감사할 게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청명에 아이들을 위탁한 원적학교의 담임교사들이 찾아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사제지간에 팀을 짜 게임을 하고 서로 붓을 잡고 도화지에 하트 모양을 그렸다. 한 교사는 제자를 보낸 뒤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며 아이를 껴안고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이런 보살핌이 극진한 탓이었는지 청명 학생 40명 중 13명은 올해 고교 진학에 성공했다. 이들에게 청명 생활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러나 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는 청명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위스쿨
위스쿨은 위클래스-위센터로 이어지는 위프로젝트의 맨 윗 단계이다. 위스쿨은 위클래스와 위센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학생들만 모아 가르치는 전문교육기관이다. 위스쿨은 전국 시도교육청 단위별로 구축 중인데 현재 운영 중인 곳은 충남·북, 광주 3곳이다. 오는 3월 인천, 내년 3월 대전, 경기, 경남에서 각각 1곳씩 개교할 예정이다.
진천=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