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태일 (14) 합력하여 선을 이룬 ‘사랑밭’ 공동체 동역자들

입력 2012-01-18 18:11


즐거운 집이 완공되기까지 나를 괴롭히고 떠난 이들은 수십 명이나 되었다. 거기다 즐거운 집이 들어서는 지역의 주민들의 반대도 극렬했다. 입구의 도로를 끊고 관공서에 진정을 해 수차례 공사가 중단됐다. 그러다 보니 완공까지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그들의 방해 공작은 여리고성보다 견고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편이었다. 그분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나를 힘들게 한 이들을 한 명씩 정리해 주셨고 당당히 즐거운 집을 건립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는 말씀을 지표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결국의 하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힘든 일이 와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면 그분은 결국에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힘차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는 말씀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루어내셨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엄청난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체생활은 이어졌다. 그러면서 1987년 자연스럽게 구제선교 기관인 ‘함께하는 사랑밭’의 모체인 ‘한국사랑밭회’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봉사자들이 힘이 되어 주었다. 규모가 조금씩 커지면서 잠시 와서 봉사하는 무급 봉사자뿐 아니라 유급 봉사자도 필요했다. 당시 유급 봉사자에게 월 10만∼20만원밖에 주지 못했지만 그들은 기꺼이 참여해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함께하는 사랑밭은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지금 4개 시설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우리 가족이 무의탁 노인, 고아,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에 감격하고 감동했다. 기꺼이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함께해 주었다. 지난 25년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힘이 되어준 분들이다.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나서 사랑밭 역사와 함께 한 박서희 해피홈 원장, 고향 친구로서 힘든 길을 함께 가겠다며 힘이 된 이옥주 함께하는 사랑밭 관리이사, 처녀 시절 험악한 피부병을 앓으며 하나님을 만난 뒤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자청한 임광심 사회복지법인네트워크 사무국장, 언제나 부르면 순종해 달려오는 중증장애인시설 브솔시내 정순옥 원장, 맡은 책임에는 밤잠을 자지 않고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자 무장된 김에스더 다문화센터 관장, 집안일보다 사랑밭일을 더 챙기는 최순자 해피홈 사무국장, 한시도 맡겨진 일을 벗어나지 않고 충성된 일꾼으로 일하는 양로원 나솔채 심우순 국장 등이다. 이들은 저마다의 삶을 포기하고 모여 평생을 가게 된 생명 같은 동지다.

또한 나에게 영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 분이 계신다. 나의 영적 아버지 강모균 중보기도단 7000클럽 실무회장을 비롯해 문제의 현장에 언제라도 달려가 자신의 일보다 더 챙기시는 노용삼 실버홈 이사장, ‘돈은 똥’이라고 말하며 언제나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 주시는 권호경 월드쉐어 회장 등이다. 나는 이 분들에게 감사, 감격할 뿐이다. 여기에다 나는 많은 팀장들과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역동적으로 함께하는 사랑밭을 일궈가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