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눈 속 산행 중 조난 60대 한인 48시간만에 기적적인 구조… “한국 군대서 배운 훈련이 날 살렸다”
입력 2012-01-18 18:51
폭설이 내린 산에서 조난당한 60대 한인 남성이 영하 10도의 추위를 견디며 48시간 만에 구조됐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한국 군대 시절 배운 생존 훈련 덕택에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 타코마에 사는 김용천(66)씨가 산악 클럽 회원들과 레이니어산에 오른 것은 지난 14일 오전. 회원들과 함께 스노우슈잉(snowshoeing·바닥이 넓은 눈신을 신고 눈 속을 걷는 겨울 레포츠)을 즐기던 김씨는 한순간 산비탈에서 미끌어지면서 계곡 밑으로 떨어졌다.
산악 클럽의 리더이고 10년 넘게 산을 탔던 김씨는 일단 일행과 무전기로 두 차례 교신하면서 하산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눈보라가 치는 계곡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다시 한번 미끄러지며 굴러떨어졌다. 그러면서 무전기와 장갑, 스키폴을 잃어버렸다. 두 번째 미끄러지면서 완전히 방향 감각을 상실했고, 날은 어두워져 갔다. 그가 입은 옷이나 장비는 폭설이 내린 겨울 산에서 밤을 지내기에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는 날이 어두워지고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자 처음에는 나뭇잎을 긁어모아 태웠다. 주위의 나뭇잎이 다 없어지자 지갑의 1달러, 5달러짜리로 불을 지폈고, 반창고와 여분의 양말 등 태울 수 있는 것은 모두 태웠다.
불이 꺼지자 큰 바위 밑을 찾아 쌓인 눈을 파고 눈구덩이 속에서 체온을 유지했다. 나뭇가지를 겹겹이 덮어 조금이라도 추위를 막았다. 잠들면 죽을 것 같아 서서 10분씩 쪼개 잠을 잤다. 그리고 기도를 했다. 그는 구조된 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나와 아내를 생각하며 혹한을 견뎠다”고 말했다. 낮에는 계속 걸으며 체온을 유지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와 걷기도 숨쉬기도 힘이 들었다.
김씨가 하산 지점에 도착하지 않자 바로 자원봉사자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구조팀이 수색을 시작했다. 기상 악화로 헬기는 뜨지 못했다.
구조팀들은 48시간 만에 그가 조난당했던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계곡에서 그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그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다. 김씨는 그런 이유에 대해 “한국 군대 시절 배웠던 기술이 살아남는 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며 “눈 속에서 신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했다”고 생환 소감을 얘기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