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일파만파] 박희태 “나는 모르는 얘기”… 수사 지켜보며 일단 버티기

입력 2012-01-18 18:37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에 의해 2008년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지목된 박희태 국회의장이 10박11일의 해외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며 연루 의혹을 강력 부인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 “해명이 미흡하다”고 다그치고 있어 향후 박 의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박 의장은 18일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건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현재 얘기하라고 한다면 모르는 얘기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발생한 지 4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할 뿐만 아니라 당시 중요한 5개의 선거를 몇 달 간격으로 치렀다”고 말했다. 이어 “2007년 여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를 때 선대위원장을 했고 또 그해 12월에는 대선이 있었다”면서 “4개월 뒤 총선 때는 선대위원장을 맡았다가 다시 두 달 뒤에 문제의 전대 경선을 치렀다”고 했다. 여러 번의 선거에 시간이 많이 흘러 돈 봉투 존재를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박 의장은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 소정의 책임을 지겠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덧붙인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할 거냐”나 “검찰 소환에 응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박 의장의 언급은 정치권에서 터져 나오는 의장직 사퇴 요구를 외면한 채 일단 버텨보겠다는 의중으로 해석된다. 입법부 수장이니 만큼 검찰이 함부로 소환하거나 조사에 나설 수 없을 것이고, 수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상황이 지금보다 더 불리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검사장까지 지낸 ‘베테랑 검사’ 출신으로 검찰 수사 진행 방향을 나름대로 추론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검찰이 확실하게 연루 증거를 잡지 않는 한, 자신에게 혐의를 씌우기 어렵다고 단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장실 관계자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지켜보자는 뜻”이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관계자는 “소정의 책임을 지겠다는 의장님 말 속에 검찰 수사 협조 등 포괄적인 게 다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의장의 전략이 그대로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야당은 검찰 수사가 미흡할 경우 특검 도입까지 주장할 태세다. 일단 시간을 끌며 여론의 추이를 보겠다는 심산이지만 검찰 수사에서 박 의장 연루가 확인될 경우에는 총선 불출마 이상의 카드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