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잉주의 대만, 가로놓인 과제들-③ 계층간, 지역간 감정의 골은] 북부 국민당, 남부 민진당 갈등 표출
입력 2012-01-17 18:50
“6개월마다 한 번씩 재야 정치지도자들과 국가 정책을 놓고 서로 상의하는 자리를 만들겠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찾아내겠다. 대만을 위해 함께 분투노력하자는 것이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후보 시절 내세운 5대 공약 중 첫 번째 공약이다. 인구 2300여만명에 불과한 대만이지만 지역간, 계층간 깊게 파인 골을 치유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놓고 고심 끝에 내놓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뿌리 깊은 ‘북부 국민당’ ‘남부 민진당’ 구도는 또다시 나타났다. 여기에다 지난 10년 사이에 계속 악화된 실업률과 빈부격차는 집권 2기 마잉주 정부에 던져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대학생들도 임금 수준이 낮은 데다 열심히 공부해도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며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선거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되자 ‘대만 대선은 계급투쟁인가’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49년 대만에 국공내전에서 패퇴한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외성인(外省人)’과 ‘본성인(本省人)’ 간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외성인이란 49년 전후 주로 중국 남부지역에서 대만으로 건너 온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수도 타이베이(臺北)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에 자리 잡았다. 그 전부터 대만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본성인으로 자처했다. 이들은 남부 등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던 외성인과 본성인 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노출된 것은 79년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 ‘타이두(臺獨·대만독립)’를 표방하면서 ‘메이리다오’라는 잡지를 발행하던 대만 지식인들이 국민당 정부에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면서 남부지역 중심지 가오슝(高雄)에서 군중집회를 강행하다 군경과 충돌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상당한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대만인들은 이 사건을 우리의 광주민주화운동에 비유하곤 한다.
49년 5월 시작된 계엄령이 87년 7월 마침내 해제될 때까지 38년 동안 본성인 지식인들은 백색테러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때까지 정치적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은 외성인들이었다. 이제 많이 엷어지긴 했지만 본성인들의 피해의식은 이러한 배경에서 형성됐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공평정의(公平正義)를 내세워 꽤 민심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빈부격차도 문제지만 이러한 역사도 작용한 측면이 있다. 특히 빈부격차는 2001년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20.9배였던 것이 2009년 28배로 늘어났다. 실업률도 1990년대 초기 1.5%에서 2009년 5.9%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마 총통이 집권 2기에 중국과의 관계나 경제위기 극복 외에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통합 조정하지 못한다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