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를 살리고 바닷속으로”… 영화 ‘타이타닉’ 빼닮은 이탈리아 유람선 순애보
입력 2012-01-17 22:05
“남편은 나를 살리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어요.”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을 닮은 순애보가 지난 13일 밤(현지시간) 좌초된 이탈리아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에서도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도 사랑하는 여자를 지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그도 아내의 손을 놓고 심해로 사라졌다.
프랑스인 생존자 니콜 세르벨은 이날 남편 프란시스와 함께 유람선에 올랐다. 니콜의 회갑선물로 자녀 3명이 마련해준 지중해 크루즈 여행이었다. 승선 몇 시간 만에 배가 암초에 부딪쳐 기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열 살 어린 아내를 살리는 것이었다. 구명정에 타는 것이 쉽지 않자 부부는 차갑고 깜깜한 지중해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남편은 한사코 만류하는 아내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건넸다. 수영을 못하는 니콜이 바다로 뛰어들기를 망설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무서워서 발을 내딛지 못하자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남편이 먼저 뛰어들었다. 아내도 뒤따랐다.
니콜이 바다에 누운 채로 남편을 부르자 “걱정 마!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외침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수온은 채 8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부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니콜은 바다 위를 떠다니다 인근 바위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던 주민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니콜은 “나는 남편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는 나를 살리려고 구명조끼를 벗어줬다”고 16일 프랑스 RTL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남편과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이날 이탈리아 해경은 실종자 수가 기존의 16명에서 13명 늘어난 29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해안경비대는 잠수부를 동원해 침수된 선체 안에 갇힌 생존자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내부 구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조대는 선체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지만 내부에 형성된 공기층(에어포켓)이 있으면 며칠 동안 생존이 가능하다는 데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다.
좌초 유람선 기름유출도 비상이 걸렸다. 코라도 클리니 이탈리아 환경장관은 이날 “선체에서 액체가 새기 시작했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유람선에는 벙커유 약 2300t이 실려 있어 만약 유출되면 질리오섬 일대 해양오염이 우려된다.
한편 유람선 승객 70여명은 소비자단체 코다콘스가 유람선 운영사 코스타 크로시에레를 상대로 준비 중인 피해자 집단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