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美·中 현상유지에 대비하라

입력 2012-01-17 18:06


미국과 중국은 지난주 실시된 대만총통 선거에 사실상 개입했다. 마잉주 총통이 친(親)중국 성향이고, 대만과 중국의 양안(兩岸)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선거를 한 달쯤 앞둔 지난 12월 대만 주재 미국 대사관 역할을 하는 미국재대(在臺)협회는 대만이 미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 후보에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중국을 의식해 웬만해서는 행정부 고위 관리를 대만에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대니얼 폰 에너지부 부장관이 대만으로 날아가 마 총통과 회담을 가졌다.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USAID)의 라지브 샤 처장도 대만을 찾았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양안 관계는 휘발성이 강한 현안이다. 미국에게 안정적인 양안 관계는 동북아 정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이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만에 대규모 무기 판매로 중국을 견제하지만, 절대 위험 수위를 넘지 않는다. 비록 서태평양에서 미국과 중국의 해군력이 갈등을 일으킬 조짐은 보이지만, 올해 말 선거를 치러야 하고 국내 경제 문제로 제 코가 석자인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심기를 필요 이상 건드릴 이유가 전혀 없다.

마 총통 체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는 딱 맞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백악관은 “양안의 평화와 안정, 관계개선 등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적극적인 환영 성명을 냈다. 대만과 중국이 최근 수 년간 지속해 온 “인상적 협력 관계”를 계속 해나가기를 바란다는 주문도 했다.

올해 5세대 지도부로 바뀌는 중국은 최우선 국정 순위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분열로 치달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의 집권이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대만 선거 결과를 놓고 ‘미·중의 승리’라고 표현한 미국 언론들도 있다.

미·중의 이런 생각은 ‘동북아 현상유지’ 전략의 한 단면이다. 현상유지 전략은 두 강대국이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양국 지도부에서 나온 즉각적인 반응은 ‘안정적 전환’과 ‘안정 관리’였다.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반응은 미·중의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전략이 어떤지를 말해준다.

올해 미국과 한국은 선거를 치르고, 중국은 다음 세대로 정치권력이 넘어간다. 북한은 급작스런 리더십 교체가 있었다. 러시아도 정치 리더십이 바뀐다. 훗날 보면 동북아 정세의 변곡점이었을 수도 있는 시점이다. 미국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를 원한다.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개발 같은 더 이상의 도발만 없다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지만 않는다면, 북핵을 현 수준에서 묶어두고 상황관리만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는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도,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겨우 유지될 수 있을 정도만 경제지원을 할 것이다.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더욱 깊어지고, 중국이 한반도를 관리하기에 더 이상 좋은 환경은 없다.

올해 안에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은 확실치 않지만, 재개되더라도 그냥 굴러만 갈 것이다. 미·중의 한반도·동북아 전략이 현상유지이기 때문이다. 두 강대국은 한반도가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동북아 안보정세 관리 차원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현상유지 상황에 들어가는 관리비용,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미·중의 현상유지 전략이 우리에게 이익이 될 수는 없다. 2012년 한국의 한반도·동북아 전략은 무엇인가.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