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산 원유 수입 단계적 감축… ‘규모’ 놓고 양국 온도차

입력 2012-01-17 23:33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단계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는 17일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과의 협의 직후 배포한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측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취지에 공감을 표하고 가능한 범위 내 최대한 협력해 나간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피력했다”고 밝혔다.

아인혼 조정관은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김재신 차관보과 만나 “우리를 돕는 모든 파트너에게 이란산 원유 구매를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북핵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는 재정부와 지경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실질적인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감축 폭을 둘러싸고 상당한 수준의 감축을 희망하는 미국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우리 정부 간에 인식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정유업계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유럽 국가들과 일본까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거나 감축하는 상황이어서 일단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리스·스페인 등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이미 밝혔고, 일본은 최근 5년간 이란산 원유 수입을 40%나 감축한 데 이어 “중대한 폭으로 이란 원유 수입을 줄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러나 감축 폭을 줄이기 위해 미국 측과 줄다리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기존 국방수권법이 명시한 ‘상당한’ 감축은 적어도 20%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란 제재에 반대 입장인 중국조차도 최근 이란산 원유 수입을 50% 가까이 줄이고 있는 상황임을 미 대표단이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감축을 기대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날 만남에서 구체적인 감축 폭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방수권법 시행 시점이 180일 이후라는 점을 고려해 감축률 협상을 하면서 대체수입선 확보에도 신경을 쓸 계획이다. 대체 수입선으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유업계는 아인혼 조정관의 발언으로 미뤄 이란 원유 수입 감축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보고 정부에 적극적인 방어를 촉구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이란 원유 수입은 20년짜리 장기계약이어서 수입선을 다변화하기도 쉽지 않아 한·미 양국의 협상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