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사람을 보는 시각
입력 2012-01-16 18:28
人當於有過中求無過, 사람은 남에 대하여 허물이 있는 가운데서 허물이 없는 점을 찾아야 하고
不當於無過中求有過. 허물이 없는 가운데서 허물이 있는 점을 찾아서는 안 된다.
이황(1501∼1570) 정도가의 문목에 답함(答鄭道可問目) ‘퇴계집(退溪集)’
퇴계가 제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질문에 답한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도가(道可)는 정구의 자이다. 한강은 남명 조식의 제자이기도 한데, 어느 날 고려왕조에 대한 포은 정몽주의 처신에 대해 모순이 있다는 소회를 적어 보내자 퇴계가 이렇게 답한 것이다.
이 말은 본래 남송의 정이천(程伊川)이 한 말인데 퇴계의 말로 더욱 무게를 지니게 되었고 송시열이 정몽주의 신도비에 쓰면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람을 보는 시선이 충후하고 인애하다. 냉정하고 예리하게 사회모순을 파고드는 오늘의 경향과 달리, 중국과 우리 고전에는 이처럼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람을 보는 태도가 면면히 전해온다.
‘서경’에 보면 순임금은 “죄 없는 이를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을 잘못 적용한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여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 백성들의 마음에 전달되어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고, ‘맹자’에는 출처를 까다롭게 가린 백이(伯夷), 청탁을 따지지 않고 경륜을 펴려 한 이윤(伊尹), 시중(時中)을 행한 공자, 이 세 분의 성향은 각각 다르지만 “죄 없는 이를 죽여 천하를 얻는 것은 모두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있다. 또 정조 때 사죄(死罪)에 대한 문건과 판결이 실려 있는 ‘심리록’에는 죽은 자나 피의자나 억울함이 없게 하려는 정신이 담겨 있는데 “반드시 죽게 될 처지에서 살릴 길을 찾는다(求生於必死)”는 말이 자주 보인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비판과 비난이 모호한 상태로 사회와 남의 흠을 캐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어 어쩌면 이런 말들이 비현실적으로 들릴 법도 하다. 그러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은 역시 부정보다는 긍정을 좋아하는 듯하다.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이 어찌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을 이길 수 있겠는가.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