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굴러다니는 부패’

입력 2012-01-16 18:28

벤틀리 뮬산, 마세라티 쿠뱅, 메르세데스 벤츠 SUV, 포르셰 카이엔.

자동차광이라면 꿈에서라도 한번 운전해봤으면 하고 바라는 명차들이다. 자동차는 원래 이동수단일 뿐이지만 이 차들은 단순한 ‘탈것’을 넘어선다. 그야말로 명품, 작품이다.

롤스로이스,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불리는 벤틀리의 기함격인 뮬산(Mulsanne). 수작업으로만 이뤄지는 이 자동차의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7주일, 인테리어 작업에만 4주가 걸린다고 한다. 특히 시트에는 넓은 목장에서 방목한 소(울타리에 부딪혀 상처가 생기면 안 되므로)의 가죽만 사용되는데 대당 15마리의 소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이런 엄청난 차들이 중국에서는 경찰용, 군용 등 관용차로 굴러다닌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6억5000만원짜리 벤틀리가 폭동진압 경찰차, 3억8000만원짜리 마세라티 스포츠카(가격으로 보아 각각 뮬산과 쿠뱅이다)가 군용이다. 또 메르세데스 벤츠, 포르셰 카이엔 등 럭셔리 SUV도 모두 경찰차다. 그런가하면 중국에 있는 아우디 A6 10만대 중 20%가 관용차다.

자동차업계는 관용차 구입비용이 연간 약 17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그 몇 배에 달할 것으로 본다. 적게 잡더라도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사업이나 과학 연구 개발 예산을 훌쩍 넘어선다.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통학버스 구입 예산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많다. 중국에서는 통학버스가 부족해 지난해 11월에는 9인승 밴에 62명의 어린이를 태우고 가다 사고가 나 21명의 유치원생이 사망했다. 공무원들의 턱없는 사치 행태에 시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시민은 “굴러다니는 부패(corruption on wheels)야말로 고급 외제 관용차 행렬에 꼭 맞는 표현”이라고 비꼬았다. 또 다른 시민은 시민들이 만든 비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도대체 군에 고급 스포츠카가 왜 필요한가? 전쟁 나면 더 빨리 도망가려고?”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중국 공산당과 관료들의 사치와 부패는 고질이다. 자동차를 권력과 신분의 상징으로 보고 끝없이 고급 대형 외제차를 추구하는 공무원들의 행태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중국의 앞날을 비관하는 기 소르망 등 일부 외국인 식자들은 공산당과 관료들의 부패를 주요한 원인으로 든다. 바야흐로 G2 시대라고는 해도 부패 청산 없는 중국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듯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