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말복] 문화의 품격

입력 2012-01-16 18:27


요즈음 우리나라의 국격이니, 한국문화의 품격이니 하는 말이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사람의 입에서 거론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이제 물질적인 풍요의 단계를 넘어 정신적인 내실, 즉 삶의 여유와 내면적인 발전에 눈뜨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지난 50년간 눈썹 휘날리며 경제발전을 향해 달려온 우리가 이제 자아 성찰을 통해 본성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품격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자신이 타고난 바탕을 알고 그 존재에 맞게 가져야 할 기본이라 할 수 있다. 품격은 등급이나 종류를 뜻하는 ‘品’자나 격조를 뜻하는 ‘格’자 모두 수준의 높고 낮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상하고 격이 높은 사람에게선 향기가 난다고 말하듯이 품격은 우선적으로 품행으로 드러난다.

그러면 문화의 품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품격 있는 문화란 어떻게 만들어질까. 문화란 인간의 창조적 실천과 생각의 결정체이다. 한국문화 속에는 우리민족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양식, 습속 등이 녹아있고 그것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자라왔다. 각 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응집되어 있는 다양한 문화유형들은 특유의 성격과 정신적 풍모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한국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형성된 특유의 품격을 찾고자 한다면 한국문화의 기본적인 바탕과 정신에서 한국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정치·경제적 발전을 50년 안에 성취하느라 전통의 본래 모습이나 기본 정신으로부터 너무 멀어져버린 것 같다. 우리의 백 년 전 모습도 잘 모르는 교양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옛 농부의 흰 바지저고리 차림에 민속춤을 추는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는 이렇게 생겼고 이렇게 춤춘다”라고 설명한다. 우리 문화의 본바탕을 이해하고 자긍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품격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감을 갖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여 그로부터 정신적 발전을 하고자 하는 자만이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이라는 것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하여 우리가 전통을 철저하게 잘라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통은 현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를 세계의 다원화된 문화교류 속에서 어떻게 한국적 특색이 분명한 문화로 현대화하느냐가 관건이다.

21세기 문화 전쟁시대에 문화의 품격은 단지 문화적인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품 있는 한국인이 되고자 하는 개개인의 일이자 국가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품격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면 어떨까. 21세기에 접어든 요즘 품격 있는 문화는 소수의 문화창조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감을 지닌 문화 프로슈머들, 즉 적극적으로 문화를 공유하며 소비하는 자들의 역할이 크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한국 문화의 기본적 맥락과 기본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행동으로 체현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은 국가 브랜드지수와 이어지고 그 나라가 만들어내는 제품의 부가가치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 동일한 제품일 경우 국산은 100, 미국과 일본은 149, 독일산은 155 정도의 국제시장 가격이 형성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차이는 오늘날 경제시장의 상품과 논리도 각국의 문화적 수준이나 품격과 무관치 않음을 알게 된다. 지구촌화된 세계의 긴밀한 문화적 접촉 과정에서 강한 문화는 약한 문화를 쓸어버리기 마련이다. 문화 발전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와 전략적인 사고가 부재한다면 한국문화의 발전은 무질서하고 혼란해질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문화적 주체의식을 지니고 한국문화의 발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적인 전략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김말복 이화여대 교수 무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