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보도 통해 부친 묘소 찾은 류연상씨 “유해 봉환 예산 삭감 너무 야속”

입력 2012-01-16 19:23


국민일보 기사(2009년 11월 16일자)를 통해 기적적으로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당한 아버지(류흥준·1922∼1977)의 묘소를 발견한 류연상(70)씨는 새해에도 마음이 무겁다. 아버지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올 수 있다는 기대는 국회의 유해봉환 예산 3억8900만원 전액 삭감으로 물거품이 됐다.

류씨는 16일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렇게 화가 나기는 처음”이라며 “더 늦기 전에 개인적으로라도 아버지 유해를 모셔오겠다”고 말했다.

◇두 살 때 생이별, 그리운 아버지=류씨의 아버지는 해방을 6개월여 앞둔 1945년 2월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 류씨는 두 살, 어머니는 20세였다. 간간이 편지를 보내던 아버지는 6·25전쟁 이후 소식이 끊겼다. 전북 완주 대둔산 골짜기에 살던 류씨 가족은 친척 집을 전전하다 충남 논산에 정착했다.

아버지 소식은 76년에 다시 접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류씨 앞으로 엽서 한 장이 왔다. 대구에서 ‘화태(사할린)억류교포귀환촉진회’가 보낸 것이었다. 당장 대구로 간 류씨는 작은아버지 앞으로 보낸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잘 지내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30년을 혼자 살았다.”

류씨는 “어머니도 저를 키우며 혼자 사셨고, 저도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해 6월 아버지로부터 사진이 든 답장을 받았다. 이후 가족사진을 보냈지만 소식이 없다가 77년 3월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1월 4일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았다.

◇68년 만에 아버지를 찾다=야간 고등학교와 야간 대학을 다니며 어렵게 공부한 류씨는 서울 한 제약회사에서 30여년을 근무한 뒤 2000년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 아버지 유해를 찾기로 결심한 류씨는 2006년 경기도 안산 고향마을이라는 곳에 사할린에서 돌아온 어르신 1000여명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 남편이 아버지와 친구였다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류씨는 2007년 8월 그 아주머니와 사할린 코르사코프 공동묘지를 찾아갔지만 묘소는 찾을 수 없었다.

류씨는 2010년 12월쯤 인터넷 검색을 하다 국민일보 기사를 봤다. 사할린 강제징용을 다룬 기사와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에 아버지 이름이 적힌 비석이 보였다. 기적이었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는 물론 현지 사할린교민회도 묘지를 찾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2011년 8월 15일 사할린 코르사코프 공동묘지에서 아버지의 비석과 마주했다. 류씨는 “아버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비석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믿었던 정부에 발등, 유해봉환 물거품=류씨는 그동안 아버지 유해는 물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유해 22기의 봉환을 위해 노력했다.

2009년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아버님 전에 고하옵니다’라는 책을 냈다. 국무총리 직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활동연장을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위원회 활동기한은 지난해 말에서 올해 말까지로 1년 연장됐다. 류씨는 위원회에 2012년도 예산안에 유해봉환 예산을 포함시켜줄 것을 부탁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 유해봉환 예산 3억8900만원을 포함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끝내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아버지 유해 꼭 모셔올 것”=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류씨는 개인적으로 유해봉환을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사할린에는 화장 문화가 없어 현지에서 아버지 유해를 화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화장을 못하면 비행기를 탈 수 없다. 비용과 절차도 모른다.

류씨는 “88세인 어머니를 생각하면 시간이 별로 없다”며 “정부에도 조사예산을 유해봉환예산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류씨는 아버지의 유해봉환이 성사되면 충남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안장할 생각이다. 망향의 동산은 류씨의 아버지처럼 강제로 외국으로 끌려간 피해자들을 위해 국가가 만든 공동묘지다. 류씨는 “가족과 상의해 그곳에 모시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6∼10월 현장조사와 자료분석을 통해 사할린에서 사망한 한인 묘 1600여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사망자 중 22명은 국내유족이 확인돼 러시와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유해봉환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전액 삭감된 봉환예산 3억8900만원은 올해 정부예산 325조4000억원의 0.012%다.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