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호남세력 ‘친노’ 경계령… 박지원, 친노 결집 견제 등 당 안팎 갈등 움직임 제동
입력 2012-01-16 19:03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위원은 16일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선과 이념이 계승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민주당도 예외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짤막한 이 한마디로 회의장엔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이른바 친노(親盧) 경계령이 발동된 것이다.
전날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대표와 문성근 최고위원이 각각 1, 2위를 차지하자 친노세력이 야당을 ‘접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야당의 지역 기반인 호남 출신은 6명 중 4위를 기록한 박지원 최고위원 뿐이다.
박 최고위원은 통상 민주당의 정체성을 논할 때 거론돼 온 ‘노무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경선 때 야권에서의 호남 중심론을 주창해 온 그가 당이 친노로 기우는 것을 견제하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된다.
민주통합당 내 호남 출신 의원들은 박 최고위원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곧 있을 총선 공천에서 당의 이미지 제고를 명분으로 호남 출신 현역의원을 대폭 물갈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호남 출신의 한 의원은 “이번 전대는 호남 학살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을 버리고 가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외연을 넓히는 전국정당화도 중요하지만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배제하면 곤란하다는 논리다.
이런 시각을 의식한 듯 한 대표와 문 최고위원은 자신들을 친노로 구획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갈라놓음으로써 야권에 갈등을 조장하려는 보수세력의 음모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도 하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 친노, 비노, 이런 구도는 언론에서 만든 것이다. 이건 분열적인 레토릭(수사)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나는 ‘친 DJ’라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성근 최고위원도 라디오방송에 출연했다가 친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는 늘 (민주세력을) 갈라치기 (하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그(친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젊은 층의 지지를 받으며 막 정치를 시작한 마당에 야권의 특정 정파를 대변한다는 인상을 받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새 지도부의 생각이나 발언 내용과 상관없이 민주통합당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친노세력 약진-호남세력 쇠퇴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의원과 국민표심이 그렇게 나타난 이상 총선 전략도 이에 맞춰 짤 가능성이 높다. 연말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도 총선에서 호남의 벽을 허물고 영남을 잠식해야 한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현재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안철수 문재인 손학규)이 모두 비호남 출신이란 점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친노가 득세한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부산과 대구 출마를 선언한 문재인 문성근 김정길 김영춘 김부겸 등 야권의 주요 총선주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기철 기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