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차가운 달빛아래 희망은 더 빛난다

입력 2012-01-16 18:18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 특별히 1937년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이주를 당한 한민족의 역사는 피눈물의 역사였다. 그곳은 10월, 11월만 되어도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진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한 이후에 러시아 사람들이 한민족을 잡아다 사람이 타는 기차도 아니고 짐승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에 실어 허허벌판에 버렸다. 여기는 일천 명, 저기는 삼천 명, 그 다음은 오천 명씩 짐짝처럼 떨어트리고 그냥 가는 것이다. 집도 없고 논과 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차에서 내려 보니까 그저 휘영청 차가운 달빛만 밝았다.

사람들은 그 벌판에서 손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살았다. 언 땅을 맨손으로 파니까 손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 한 겨울에 맨손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움막에서 살았다. 그 때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 병들어 죽은 사람, 배고파서 굶어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 일부는 해방이 되자 고국으로 돌아오기도 하였고 대다수가 거기서 삶의 터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들은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들을 생각할 때 마다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들은 그 죽음과 같은 폐허의 땅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 열심히 희망을 품고 살았다. 시련의 칼바람이 불어오면 올수록 더 강인한 꿈과 생명력으로 일어섰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절망이라는 기차에 실려 폐허에 버려진 존재같이 되었다. 개교회, 교단, 교계의 기득권 싸움과 분열, 고소, 고발은 목적을 상실한 채 죽음의 절벽 끝으로 달려가는 욕망의 전차와 같았다. 공명을 말하나 그 외침은 오히려 칼이 되었고 남은 것은 상처와 폐허의 잔재뿐이다. 희망이 실종된 패닉상태다. 패배와 좌절의 바이러스가 번져간다. 그러나 짐승이 타는 기차에 실려 죽음의 땅에 버려졌던 고려인들, 그들은 그 차가운 달빛아래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 한 마음으로 하나의 꿈을 꾸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무참히 짓밟힌 들풀처럼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서서 꽃을 피웠다.

우리도 다시 한 마음으로 하나의 꿈을 꾸자. 상대방을 죽이려는 목소리를 그치고 희망을 노래하자. 꿈이 없기에 싸운다. 비전이 없기에 서로 높아지려고 분열하고 다툰다. 이제 우리 가슴에 다시 꿈과 비전을 품자. 사랑과 희망의 심포니를 울리자. 우리 민족은 저 고난과 역경의 바람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내 역사의 들판에 찬란한 희망의 꽃을 피웠지 않았던가 . 2012년의 태양이 밝았다. 올해를 한국교회의 꿈과 희망의 해로 만들자. 다시 폐허를 지나 찬란한 봄의 향연을 꽃피우자. 차가운 달빛 아래서 맨손으로 땅을 팠던 그들의 불굴의 꿈처럼, 결코 쓰러질 수 없는 희망의 씨앗을 눈물로 뿌리며.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