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색 본능’ 정치와 권력을 풍자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천민정 ‘폴리팝(POLIPOP)’ 展
입력 2012-01-15 18:27
스티로폼으로 만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동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손짓을 한다. 앞쪽에는 연설을 하는 오바마가 ‘무서워잉’이라는 글자에 묻혀 있고, 뒤쪽에는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패러디된 오바마가 미국 드라마 ‘앨리 맥빌’의 주제가 ‘우가차카’에 맞춰 아기춤을 추고 있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전시되는 미디어 아티스트 천민정(39)의 ‘폴리팝(POLIPOP)’ 출품작이다.
‘폴리팝’은 ‘폴리티컬 팝아트(Political Pop Art)’의 줄임말로, 작가가 지난 15년간 펼쳐온 탈 장르의 작품 세계를 총칭한다. 이화여대를 나와 1997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정치와 대중매체의 상관관계에 대한 시각적·철학적 탐구를 작업 소재로 삼았다. 전시는 3개의 방으로 나눠 정치와 팝문화, 미디어를 결합한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오바마 방’에는 오바마를 우상화한 작품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대중매체를 표현했다. 연기자에서 정치가로 변신하는 영화배우들의 모습은 엔터테인먼트와 정치의 역학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오바마와 천민정 작가가 등을 맞댄 채 알통을 자랑하며 각자 “Yes, We Can” “We Can Do It”이라고 외치는 작품은 힘을 과시하고 싶은 권력자의 속성을 패러디한 것이다.
‘독도의 방’은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첨예한 대립, 남북관계, 한·중관계, 아시아와 서양 문화의 관계를 디지털 회화에 담아냈다.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포켓몬으로 묘사한 작품은 권력의 이미지 선동을 비꼰 것이다. 작가가 독도에서 직접 촬영한 자료 화면을 토대로 제작한 영상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가상의 독도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다이아몬드 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소비행태, 자본주의 폐해로 인해 무너지는 경제와 문화, 환경 문제 등을 다룬 디지털 회화를 선보인다.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로열 웨딩, 일본 쓰나미와 핵 위기, 스티브 잡스와 김정일 사망 등 지난해 일어난 사건사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52장의 디지털 사진 프레임 설치물에 담았다.
성곡미술관이 2009년부터 소개하고 있는 중견·중진작가 집중조명전의 일환으로,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넘쳐나는 정치문화와 선동적 대중문화를 현대미술로 표현한 작품이 재기발랄하면서도 신선하다. 다만 오랫동안 미국에서 지낸 탓인지 한반도 현실을 한국인의 시선에서 더욱 실감나게 담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작가는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의 딸이다(02-737-765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