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겨울나무가 하는 말

입력 2012-01-15 22:06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바람이 몹시 추운 날, 벌거벗은 몸으로 혹한을 견디고 있는 나무를 보면서 떠올린 동요다. ‘인고의 시련을 견디면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나무는 일부러 거기 버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삶에도 추운 겨울나무 같은 여정이 있다.

새해, 정치권의 화두이자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한 일자리와 관련해 만난 언론과 한 여성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의 위로가 가장 듣기 싫다고 했다. 그의 말속에는 “아파 죽겠는데 ‘그럴 수도 있으니 견뎌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는 분노가 깔려있다. 시련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래도 겨울나무처럼 견뎌야 한다. 그대로 주저앉아 일생을 고생할 것인가, 한동안 죽기 살기 식으로 버텨 전 생애를 감사하며 살 것인가 중에서 골라야 한다. 선택은 자명하다.

그런 선택에 대해 자연 속에서 답을 찾고 있는 ‘에코 CEO’ 김용규씨는 이렇게 화답한다. “생명을 보라. 벌과 나비를 만날 수 없다고, 그것이 두렵다고 먼저 시드는 꽃은 한 송이도 없다. 생명에 깃든 위대한 자기완결의 힘을 믿는 한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은 모두 자기로 살 힘을 가졌으므로.”(저서 ‘숲에게 길을 묻다’에서)

이 겨울, 철벽같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고도 힘을 얻는 것은 하늘이 준 ‘자생력’이라는 선물 때문이다.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추운 바람과 햇빛의 양을 탓하지 않는 것, 악조건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며 움을 만들어 가는 것, 봄에 파란 새싹을 틔워내고 나다운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것. 사계절을 살아내는 나무가 어느 하나 우리에게 허투루 전하는 얘기는 없다.

내가 제대로 좌표 설정은 했는가, 그 좌표가 행여 남과 비교해서 나온 것은 아닌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에 확신이 섰다면 그게 오늘부터 살아갈 내 자리이자 방향인 것이다. 그 열매가 늦다고 조급해 하거나 미리 불행해할 필요는 없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겨울을 서둘러 봄이나 여름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다.

지금 최선을 다하면서 뚝심 있게 기다리면 되는 것이리라. 오늘도 여전히 ‘나무의 겨울나기’를 실천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무엇으로 얼어붙은 영육을 녹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늘이 인간에게 나무의 삶을 통해 건네는 ‘자연의 계시’가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