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학교폭력과 초식남
입력 2012-01-15 17:53
왕따, 이지메, 갈취, 성적 억압 등 학교폭력이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것도 피해 학생들이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고서야 우리는 겨우 그 심각성을 알게 됐다. 참담하다. 그간 학교폭력에 시달려온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해당 학교의 교사·학생·학부모들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른 부모들조차 행여 내 아이가 그런 처지에 몰릴까 전전긍긍이다. 교육당국도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바쁘다. 이러다 늘 그랬던 것처럼 반짝 호들갑을 떨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잊혀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적확한 진단에서 효과적인 대책이 나올 텐데 원인만 해도 매우 다양하다. 학교의 상담 부재 및 소극적 대처, 교사의 무관심·무책임, 인터넷게임의 폭력성, 가상·현실세계를 구분 못하는 어린 연령대, 가해·피해자에 대한 가정 내 관심부족, 가정교육 미흡 등. 대체로 학교, 가정, 그리고 애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한편으론 우리의 경쟁지상·금전만능주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만연하면서 가정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공동체성이 크게 훼손됐다. 우리보다 나를 앞세우고 가족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책임지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학교폭력의 먼 원인으로 외환위기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몇 년 전 일본에서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자국의 20대 젊은이들을 ‘신일본인’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1990년대 장기불황 중 10대에 들어서면서 철이 들기 시작했는데 당시 부모세대의 심각한 경제난, 대학을 졸업해도 구직난에 시달리는 형·누나세대를 보면서 일찌감치 대(對)사회 불안증세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타난 이들의 특징은 소비보다 저축을 중시하고, 남의 일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연애나 해외여행을 즐기기보다 홀로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등장한 것이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초식남이다. 꽃미남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으나 초식남은 일본의 장기불황이 낳은 사회현상이다. 초식남 현상은 기왕의 만혼(晩婚)·비혼(非婚) 경향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지금의 학교폭력이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 분위기가 빚어낸 것이라면 대책의 초점은 공동체성 회복에 맞춰야 한다. 자칫 이들을 윽박질러 온순함이나 사회적응능력만을 키우겠다면 5∼10년 안에 한국판 무관심 초식남의 탄생도 피할 수 없겠다.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