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만 물어보고 다들 그냥 가네요”… 설 열흘 앞 영등포시장 르포
입력 2012-01-13 20:31
“설 대목도 옛말입니다.”
설을 열흘 앞둔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전통시장은 썰렁했다. 시장 골목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들은 설 손님을 맞기 위해 과일, 생선, 채소 등을 준비해 놓고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할 일이 없는 상인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군데군데 피운 난로 주위에 2∼3명씩 모여 몸을 녹이고 있었다. 모여 있던 상인들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손님도 없는데 새벽부터 나와서 문을 열면 뭐하나”라며 푸념을 했다. 오전 내내 시장에는 반찬거리를 사러 나온 손님만 보일 뿐이었다.
영등포전통시장에서 가장 오래 장사를 했다는 박흥수(70)씨 가게 역시 손님이 없었다. 그는 “40년 넘게 채소를 팔면서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된 적이 없다. 하루 종일 손님이 없는 날도 있다”며 “손님이 워낙 없으니 설 대목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했다. 건어물 가게 주인 김모(65·여)씨도 “시장에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다”며 “설을 앞두고도 물건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 손님들은 비싸다고만 하고 사질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채소 가게 상인들은 일부 채소 가격이 크게 올라 손님이 더 떨어질까봐 걱정했다. 칠성상회 심공순(57·여)씨는 “호박, 오이, 고구마, 부추 같은 채소가 값이 많이 올랐다”며 “고구마는 너무 비싸 아예 갖다 놓지 않았다”고 했다. 이 가게에서 호박은 10㎏ 3만원, 오이는 15㎏에 5만원, 시금치는 10㎏ 3만원에 판매된다. 이는 평소보다 5000원 정도 오른 가격이다. 심씨의 가게에 30여분 동안 3명의 손님이 들렀지만 가격만 물어볼 뿐 사는 사람은 없었다. 심씨는 “손님들이 그냥 가도 이제는 화도 안 난다”고 씁쓸해했다.
시장을 찾은 주부들도 쉽게 지갑을 열지 못했다. 장을 보러온 박화자(59·여)씨는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시장에서 마음 편하게 장을 보기 어렵다”며 “이번 설에는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700여m 떨어진 영등포청과시장도 영등포전통시장과 사정이 비슷했다. 설과 추석이 가장 큰 대목이지만 이번 설은 영 경기가 살지 않는다고 했다. 입구 쪽 과일 가게 10여곳에는 설 선물용 포장 과일 박스가 높게 쌓여있었지만 찾는 손님은 크게 줄었다.
이곳에서 10년간 장사를 했다는 해피청과 한광수(54) 사장은 “설 대목인데도 선물세트를 사는 사람이 없다. 이번 설에는 본전도 못 뽑을 것 같다”며 “사람들이 가격이 비싸도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찾으니 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