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재중] 역지사지
입력 2012-01-13 18:24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은 중국의 전설적 임금인 우왕(禹王)과 후직(后稷)이 태평한 세상에 자신들의 집 문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다며 공자가 그들을 어질게 여겼다고 전한다. 또 공자는 자신이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顔回)가 난세를 당하여 누추한 골목에서 거처하며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一簞食 一瓢飮)로 살면서 근심하지 않고 생활을 즐겼다며 덕을 칭찬한다.
치수(治水)에 능했던 우왕은 천하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마치 자신이 잘못해 그를 빠뜨린 것처럼 여겼다. 농업에 능했던 후직 역시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굶주리게 하는 것처럼 여기며 문제해결에 전념했다.
이에 맹자는 성현의 마음이 편벽되고 치우친 바가 없이 각기 도(道)를 다하기 때문에 우왕과 후직, 안회가 서로 처지를 바꾸었더라도 모두 그렇게 행동했을 것(禹稷顔子易地則皆然)이라고 설파했다. 여기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유래했다. 역지사지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처지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견해차는 더 커지고 갈등은 확대되기 십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해 사자성어를 ‘역지사지’로 정했다. 법관이 재판을 받는 입장이라면 당사자들이 어떤 모습의 법관을 원할 것인지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다듬을 때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왕따’ 당하는 심정을 알게 하기 위해 자신이 ‘왕따’당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써보게 하고 발표시켰다고 한다. 그랬더니 ‘힘들어 자살한다’ ‘전학간다’ ‘증오하고 복수한다’ 등의 답을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왕따’ 당하는 학생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논어 위영공(衛靈公)편에 보면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평생 간직할 한 말씀을 요청하자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가르쳤다. 이 또한 역지사지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가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돌아보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김재중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