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백석을 찾아서] 당선작 ‘그 모(母)와 아들’… 해변 농막으로 돌아온 과부의 고단한 삶 묘사

입력 2012-01-13 18:54


백석의 이름은 1930년 1월 5일자 조선일보 4면에 실린 ‘신년현상문예 당선자’ 명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용송(함북 회령)의 ‘과민증’, 정순정(황해도 해주)의 ‘어머니와 나’와 함께 백석의 ‘그 모(母)와 아들’이 단편소설 당선작으로 뽑혔던 것이다. 만 18세. 최연소 당선이었다.

등단작은 그해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연재됐다. 작품 줄거리는 어느 동네에서 과부로 살아가는 ‘대감’이라는 아이의 엄마와 쌀장수인 양고새가 서로 눈이 맞아 불륜 관계로 발전해 애까지 낳았으나 과부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들 대감이와 시어머니와 함께 해변의 농막에서 여생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아비를 생각하는 마음 어미에게 대한 미움 이것은 그를 전업시 파리파리 말리게 하는 연유이다. 다른 길을 취하야 꼴 늘리는 것을 안보자 하나 늙은 할머니와 어린 동생이 있다. 이런 대감은 어미의 하는 짓을 가만이 모르는 체 할밧게 업섯다. 대감의 아비는 대감이 열다섯 때에 죽엇다. 교탕부증으로 사 년 동안을 고생하다 죽엇다.”(‘그 모(母)와 아들’ 일부)

엄마의 불륜 소식을 전해들은 대감이 전에 없이 ‘파리파리’ 살이 빠졌다는 표현은 그의 시에서 서민들의 입말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백석이 소설로 등단했다는 점은 나중에 공동체적 친근성이 드러나는 이른바 ‘이야기 시’를 개척할 수 있는 토양이 됐던 것이다.

등단작엔 시적 감수성이 언뜻 비치기는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시적인 자아를 붙든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모(母)와 아들’은 엄마가 양고새와 살을 붙이며 살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연후에 세상과 등 진 채, 갖가지 소문마저 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로 귀환한다는 해피 엔딩으로 귀결된다. 소설의 플롯도 훗날 만주 시절의 백석이 끊임없이 자기 존재에 대한 반성적 자각을 하면서 자기 안의 언어적 울음을 발견하고자 했던 유랑 생활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그후론 일년이 지나 대감이는 이 동리에서 사십 리나 더 떨어져 있는 마다리에 이사를 갓섯다. 과부는 도로 들어와 과부 어미가 되엿다. 두르 별별 것을 다 지나본 과부는 이전 과부는 안이엿다. 싀어머니에게 아들에게 그는 며누리요 어미가 되엿섯다. 이곳은 해변이다. 농막에서 생각지 안튼 은윽한 살림을 하는 그들은 지나간 넷일을 제각금 생각하고는 마음을 언잔해 하엿다. (중략) 그들은 그후론 오즉 농막에서 자고 깨고 할 뿐이엇다. 과부의 헛소문도 슬슬 녹아버리고 과부나 고새나 오즉 곱비-그 어린 것을 새에 둔-슯흔 팔자를 서로 호올로 한숨으로 되엿을 것이다.”(‘그 모(母)와 아들’ 끝부분)

흥미로운 것은 작품 끝에 적힌 ‘1929년 12월 10일’이라는 날짜다. 경제 사정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백석은 전전긍긍하던 차에 평북 정주의 한 과부 이야기에 살을 입혀 현상문예에 응모했던 것이다. 과부의 고난은 지금이나 그 당시나 문학적 주제였던 모양이다. 대학에 진학하기도 전에 북풍 몰아치는 정주에서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원고를 써내려갔을 백석은 이미 시인의 운명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